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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호남 문화유산- 천년 호국사찰 남원 실상사(實相寺) ②


 김 도 영
<예원예술대학교 교양학부장/ 본사 자문위원>
 
천년 세월을 보내오면서 호국 사찰로 알려진 실상사에는 유독 일본, 즉 왜구와 얽힌 설화가 많이 전해진다. 앞서 언급한 사찰의 전소 요인을 정유재란 당시의 왜구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는 부분에서도 일본과 관련된 실상사 역사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약사전의 약사여래불은 천왕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천왕봉 너머에는 일본의 후지산이 일직선상으로 놓여져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가람 배치도 동쪽을 향해 대치형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사찰 옆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어 대조적이다.

이 절에는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천왕봉 아래 법계사에서도 전해지고 있어 흥미를 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실상사 경내의 보광전 안에 있는 범종에 일본 열도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스님들이 예불할 때마다 종에 그려진 일본 열도를 두드려 치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와 실상사가 흥하면 일본이 망한다는 구전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스님들이 이 속설에 따라 범종의 일본 지도를 많이 두드린 탓에 범종에 그려진 일본 지도 중 훗카이도와 규슈 지방만 제 모양으로 남아 있을 뿐 나머지 열도는 희미해져 가고 있다.

최근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망언이 끊이지 않고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는 작금의 한일관계를 볼 때 보광전의 범종에 얽힌 사연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실상사에는 백장암과 서진암, 약수암 들의 암자가 있으며 이 곳에는 신라시대의 많은 문화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국보 제10호로 지정된 백장암 삼층석탑은 전형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로운 설계를 하고 있어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공예탑이기도 하다.

이밖에 실상사의 문화유적은 많다. 보물급에는 수철화상 능가보월탑(보물33호, 905년), 수철화상 능가보월탑비(보물34호), 석등(보물35호, 개산 당시), 부도(보물36호, 고려), 삼층쌍탑(보물37호, 887년), 증각대사 응료탑(보물38호, 861년 이후), 증각대사 응료탑비(보물39호), 백장암 석등(보물40호, 9세기 중엽), 철제여래좌상(보물41호, 개산 당시), 청동은입사향로(보물420호, 1584년), 약수암 목조탱화(보물421호, 1782년) 등 11점이 보존되어 있다.

지방유형문화재로는 극락전(전북유형문화재 제45호, 1684년), 위토개량성책(전북유형문화재 제88호, 토지대장), 보광전 범종(전북유형문화재 제138호, 1694년), 백장암 보살좌상(전북유형문화재 제166호, 고려), 백장암 범종(전북유형문화재 제211호, 1743년) 등 5점이다.

중요민속자료는 실상사 입구의 만수천을 가로지르는 해탈교 양쪽에 세워져 있는 석장승 3기(제15호)가 있다. 장승은 벽수라고도 하는데 보통 한 쌍으로 세워져 있으나 이 곳의 장승은 남녀를 판별할 수 없으며 만수천 쪽에 원래는 4기가 세워져 있었다.

절을 향해 건너기 전에 세워진 한 쌍의 돌장승 중 오른편 장승은 1936년 홍수 때 떠내려가고 없다. 잡귀를 막기 위해 세워진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은 두 눈과 코가 크며 둥글며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손은 창을 든 것 같은 모습이며, ‘대장군(大將軍)’은 뒤에 만들어진 듯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

실상사에는 이렇듯 호국의 정신이 흐르며 찬란한 신라 불교 문화의 숱한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는 천년 고찰이다.

사실 실상사는 통일신라시대의 구산선문 중 가장 대표적인 선종 사찰로 남아 았다. 흥덕왕 3년(828)에 중국 당에서 귀국한 홍척(洪陟)은 구산선문 가운데 남원 산내에 실상사 산문을 열고 선종을 크게 전파한 실상사의 개산조이다. 실상사가 세워지던 통일신라 말에는 지방 호족들이 발호하면서 전국적으로 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이때에 선종의 유행 뿐만 아니라 풍수지리, 도참 예언, 무속 신앙 등 민간 신앙이 사회 전반에 민중들의 불안감에 편승한 신앙적 욕구 때문에 급속히 확산되어 갔다.
(문화재청 자료(호남문화유산 이야기 여행, 2011년)  참조.

<다음편에 ③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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