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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호남 문화유산- 천년 호국사찰 남원 실상사(實相寺) ③


김 도 영
<예원예술대학교 교양학부장/ 본사 자문위원>
 
풍수에 밝은 도선국사는 혼란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국 각처의 명당을 점정하여 비보 사찰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남원의 실상사 역시 풍수지리와  선종 불교가 결합된 풍수 비보적 호국 사찰이라 할 수 있다.

당(唐)에 가서 수학한 유학승들도 신라에 대한 반감이 있었지만 당시 후삼국 시대에는 신라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았다. 그래서 경주에서 떨어진 각지에서는 중앙 정부의 통제가 약화된 틈을 타서 지방 단위의 호족들이 독자적인 지방 세력을 구축해 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유학생들을 통해 유입된 선종은 왕권과 귀족들보다는 반신라적인 호족 세력들을 후원하였고 호족들은 개혁적, 민중적 성향의 호족을 선호하였다. 이처럼 양자가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호족 세력과 결탁한 선종은 불교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갔다.

헌덕왕 13년(821)부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는 932년까지 약112년 간은 선종이 당에서 도입되어 성행하는 기간이다. 삼국 통일 직후 왕권 강화와 중앙집권국가를 지향하고자 왕실과 지배 계층을 중심으로 화엄불교가 선양되어 갔다.

이와 같은 신라의 화엄사상과 선종 불교가 결합되는 사상적 흐름의 변화를 실상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실상사의 화려한 불교문화유산은 실상사를 창건한 홍척 국사가 반신라적 승려보다는 왕실에 귀의한 친신라적인 국사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당시 선종은 지방의 호족세력들의 지원을 받고 선문을 개창하지만, 장흥 보림사 가지산파의 도의 선사와 실상사의 홍척 국사는 왕실의 후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왕실에서 그를 주목한 것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흥덕왕은 김헌창의 난으로 인한 혼란을 극복하고 흩어진 민심을 수습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체제강화를 위한 강력한 개혁정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왕은 사치를 금하라는 교서를 내렸다.

이는 대규모 불사를 통해 교종세력과 결탁하고 있던 진골 출신의 왕족과 귀족들을 향한 견제 차원이기도 하였다. 이들은 언제든지 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왕은 귀족들의 교종 지원은 억제하고 홍척에 대한 지원은 확대함으로써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귀족들을 견제하고자 했던 것이다.

당나라에서 선종 도입 단계에 선문을 연 실상사는 교학(화엄)불교에서 선종불교로 전환하는 과도기적인 불교 양상을 보여주는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라 정부는 왜 홍척에게 남원 지리산 남악 계곡에 실상사를 창건하고 선문을 열도록 하였을까.

그것은 남원의 지리적 중요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지리산 천왕봉과 마주하면서 지리산과 덕유산의 경계인 드넓은 산내 협곡에 위치한 실상사는 통일신라 말기 불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국보 및 보물급 문화재들이 10개가 넘는다. 화려하고 조각 기법이 뛰어난 석탑, 부도, 석등, 불상 등 화려했던 통일신라 시대의 불교 문화가 그대로 표현된 조각 양식의 문화재들이다.

불교의 모든 종파를 초월하여 사상적 융합을 이루는 화엄 사상이 이곳 실상사의 우수한 불교 조각을 형성하게 한 동력이 되었으리라. 종파의 대립과 갈등 관계를 극복하는 불교 사상의 총화가 화엄사상이라고 한다면, 실상사가 창건될 당시 불교는 화엄 사상과 선종 불교가 결합된 통불교적인 성격으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실상사는 또 풍수 비보적인 호국사찰이다. 풍수지리적으로 실상사가 위치한 협곡 분지는 지기(地氣)가 소용돌이 치는 곳이다. 백두대간으로부터 내려오는 지맥이 덕유산을 통해 이곳에 머물고 그곳에서 다시 지리산과 지기가 만나 연결되는 곳이다.

그래서 실상사 협곡 분지는 풍수지리 상 ‘여기설기(餘氣泄氣)’하는 곳이다. 만약 지기가 이곳에서 일본으로 빠져 나간다면 우리나라는 망하고 일본은 흥하게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실상사와 관련해서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넘어간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이러한 설화는 남원 지역이 고려시대 이전부터 왜구들의 침공으로 시달려 왔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실상사가 이 지역에서 대표적인 비보적 호국사찰이란 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남원에서 실상사와 더불어 고려시대에 세워진 만복사나 선원사 역시 비보 사찰이자 호국 사찰이다.
(문화재청 자료(호남문화유산 이야기 여행, 2011년)  참조.
<다음편에 ④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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