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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사람들


홍 성 근
 <전, 동북초등학교 교장>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인류가 채집생활을 멈추고 주거생활을 하면서 집단이 모여서 구성원을 이루고 살게 된 것이 신석기시대라고 표현하는데 역사적 의미로 보면 벌써 기원전 몇천 년 전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인류의 사회 조직화는 이미 수천 년을 넘어선 것 같다.

하기야 한반도의 역사와 우리 민족의 근원 설화를 보면 단군조선에서부터 시작한 지 5000여 년이 넘은 세월이라고 하니 고대 이집트의 문명 신화를 기원전 몇천 년이라고 한들 한반도의 우리 민족 역시 절대로 뒤지지 않는 역사가 존재하는 것 같다.

예전 영화에서 표류하거나 사고로 무인도에 떠밀려 왔는데 함께 했던 모든 사람이 다 죽고 혼자만 생활하는 무인도 배경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에서는 잠시동안 무인도에서 사는 생활의 방황을 보여 주었지만 이내 무인도 생활에 적응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적응할 수 있도록 하였더라도 혼자만의 생활은 상상을 초월하는 외로움과 정신적 고통이 그대로 보여준다. 실상 영화에서 보는 것만이 아닌 생활에서의 혼자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간다.

교도소에서도 징벌방에 갇히면 대부분 독방이다. 이 독방의 외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고독에 따른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면 후회가 넘치는 과거를 회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독방이라고 한다.

사람은 개인에서 가족을 이루고 가족이 모여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며 궁극적으로는 국가와 민족 나아가서는 세계 속의 일원이 되어 평생을 살아간다. 물론 요즈음은 1인 세대라고 해서 독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을 위한 별도의 각종 생활 프로그램이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의 삶 또한 과거의 사회적 동물에서 개인의 동물사회로 변해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1인 구조의 생활은 얼핏 편리할 것 같으나 사실상 집단을 이루는 조직의 사회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개인의 퍼스널리티를 보장한다고 하지만 건강 문제와 자신의 주변에서 다가오는 각종 위험 요소에 대한 대처능력이 매우 미흡해진다는 것이다.

조금은 복잡하고 경쟁 사회가 되더라도 사회적 조직의 일원이 되는 것이 그래도 좋다는 생각이다. 필자는 마을공동체를 운영하면서 함께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즐거움에 가득한 나날을 보내곤 한다.

혼자만의 생활도 중요할 것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더불어 생활할 수 있는 공동체의 만남도 역시 소중한 일상이 되고 있다. 제도화된 사회규범의 틀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규범의 틀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틈새시장의 활동이 있다.

바로 마을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형성되는 지역사회의 공동체이다. 여기는 이념과 사상이 아닌 마을 단위의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자발적인 교육과 훈련 그리고 대화와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면서 함께 한다.

복잡한 일상의 토론이나 의사결정이 아닌 내 주변의 생활이나 생각 그리고 자녀를 가진 사람들의 경우 자녀 돌봄과 함께 여러 가지 규범 사회에서 행하지 못하는 틈새 활동의 영역을 찾아 짬을 내어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어느새 우리 사회는 개인적인 우월의식과 경쟁사회의 치열한 삶이 최고의 가치를 말해주는 것처럼 비춰졌다. 학교에서는 늘 1등만을 생각하여 상위그룹의 성적순으로 평가를 받고 사회에서는 진급의 우선순위로 평가받는 세상이 되어 나머지 주변인들은 그들의 들러리 정도로밖에 치부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곤 했다.

오죽하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예요.’라는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매우 즐겁고 유익한 일이다. 범죄집단이나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아닌 공동체는 미래사회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오늘도 함께 하는 사람들과 모여 행복한 오늘과 내일을 꿈꾸면서 환한 미소로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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