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도 영
<예원예술대학교 교양학부장/ 본사 자문위원>
광한루원의 답사는 정문인 남문(청허부)을 통해서 광한루원으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오른쪽의 산책길로 들어서면, 그 길 끝에 춘향의 절개를 상징하는 듯 대나무숲에 둘러싸인 춘향사(春香祠)를 먼저 만난다.
이곳은 춘향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산책길 중간에는 성이 같다고 해서 춘향의 아버지일지도 모른다고 추축되는 남원부사 성안의 비석이 춘향사 옆의 선정비들과 별도로 세워져 있다.
선정비들을 지나면 광한루에 이르고 그 앞쪽에 오작교가 드리워져 있는 연못이 있다. 광한루는 연못가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막돌바른층 쌓기로 된 낮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사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2층 나루 부분에는 나무기둥을 세웠다.
그리고 2층 누마루 주위에는 계자 난간을 둘렀고 기둥 사이에는 모두 분합문의 들창을 달아 사방이 모두 개방되게 하여 북쪽으로 교룡산, 남쪽으로 금암봉이 멀리는 지리산 노고단과 반야봉이 보이게 한 정면 5칸 측면 4칸 짜리 중층 팔작기와집이다.
오른쪽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가 덧붙여져 있다. 2층 바닥은 원래 귀틀을 자고 점판을 깐 우물마루였을 것으로 추측되나 지금은 장마루로 되어 있다. 주위에 계자 난간을 둘렀으며, 기둥 사이에는 모두 분합문의 들창을 달아 시야가 시원하도록 하였다.
밀양 영남루, 삼척 죽서루, 진주 촉석루 등이 들창이 없이 탁 트인 구조인 점에 견준다면 이는 광한루의 독특한 개성이라 하겠다. 동쪽에 잇댄 익루는 삼면에 툇마루를 돌려 개방하고 그 안쪽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따라서 익루의 1층은 온돌방 아랫 부분으로 벽체로 두르고 여기에 아궁이와 말뚝을 들였다.
광한루 뒤쪽으로는 누에 오르기 위해 만든 층단 정면 1칸 측면 3칸의 회랑식 월랑이 가설되었는데, 이는 광한루의 본관이 차츰 북쪽으로 기울어지자 고종 14년(1877)에 부임한 남원부사 이용준이 수지면에 사는 대목 추씨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기울어짐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이 북쪽 월랑은 우리나라 건축사상 누각에 현관을 가설한 첫 시도이다. 이로써 외관은 더욱 화려해졌다.
누각 안에는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 계관(桂觀), ’광한루(廣寒樓)란 편액이 걸려있다. 호남제일루라는 말 그대로 호남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라는 뜻이며, 광한과 청허부는 하늘나라 월궁의 옥경에 들어서면 ‘광한청허지부’가 있다는 신화적 전설을 상징하고,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을 상징한다.
광한루 누각에 걸린 여러 편액 중 광한루란 편액은 신익성이 호남제일루와 계관의 편액은 1855년 남원부사 이상억이 누각을 중수하면서 손수 써 걸었다. 이 중 계관의 편액은 동학농민운동 때 없어진 것을 1930년대 광한루를 대대적으로 보수할 때 남원유지 강대형이 다시 써 건 것이다.
또한 현재 광한루에 걸린 광한루란 편액은 전, 민의원 조정훈이 쓴 글씨라고 하는데 금암봉의 금수정과 용성관의 편액 글씨도 썼다고 전해온다.
광한루 앞 연못가 한 귀퉁이에 있는 길이 약 2.4m의 자라상은 삼신산이 조성될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 자라상을 놓은 이유는 분명치 않은데, 신선 사상에 연유해 자라로 보는 전설과 풍수지리상 천재지변을 몰고 오는 지리산의 동남풍을 제압하기 위한 거북으로 보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작교 건너에 있는 완월정(玩月亭)은 1969년 광한루원 확장 때에 기존 연못을 확장하고 주변을 정화하면서 새로 지은 수중 누각이다. 광한루가 달나라의 궁전을 재현한 것이라면, 완월정은 지상의 사람이 달나라를 즐긴다는 뜻으로 세워진 건물이 되겠다.
정면 6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된 누각으로 광한루원의 절경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해마다 광한루원에서 치러지는 춘향제의 무대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본래 광한루원은 6천여평이었으나, 어러 차례에 걸친 확장 공사 끝에 춘향을 떠올리게 하는 각종 장면이 재현된 춘향전 기념관, 춘향과 이도령이 백년 가약을 맺은 부용당, 춘향의 어머니가 살았다는 월매집 등이 추가되어 현대는 1만7천여평에 이른다.
광한루가 다른 누각과 비교할 수 없는 점은 조선 후기 문예부흥기라 불리우는 영·정조시대에 창작활동이 활발하여 판소리계 소설 <춘향전>의 무대이며 국악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주지의 사실이다.
(문화재청 자료(호남문화유산 이야기 여행, 2011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