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 석 봉
<기아자동차 전주지점 수석팀장>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사회가 조직으로 구성되면서 갈등과 분쟁이 끊이질 않았다. 그 원인 대략 고대부터 인간의 삶에 대한 질적인 향상에 근본을 두고 있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바로 식량에 대한 것이었는데 물물교환처럼 사이좋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 있는 것을 강제로 빼앗은 것이 일상화되었었다. 그러다가 국가라는 틀이 존재하면서 통치의 개념으로 식량자원에 대한 생산과 유통이 전개되면서 조금은 안정화가 되었다.
국가의 전쟁에서는 이념과 사상 그리고 권위의 상징으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었다고는 하지만 원래 부족이나 국가 간의 전쟁이 시작된 배경에는 이처럼 먹고 살기 위한 생계적인 수단이 다른 지역이나 사람들과의 갈등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중세 유럽에서의 갈등은 표면적으로 종교적인 영향으로 이루어진 영주들 간의 작은 갈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또한, 봉건주의 사회에서 왕이나 통치자가 같은 행위의 권위는 이루말 할 수 없을 만큼 상징성이 있어 이를 무시하거나 권위에 손상을 입었다고 생각하면 갈등이 배가되어 전쟁으로 치달았다.
요즈음의 현대사회는 발달한 문명에 따라 더욱더 많은 갈등과 분쟁이 존재한다. 이러한 갈등이 커지면서 국가 간의 전쟁이 간혹 일어나는 등 갈등의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어떤 면으로 보면 갈등은 사실상 통치자의 생각에 따라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치자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국민을 동원하여 주변국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거나 혹은 국민 중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학살하거나 감옥에 가두는 갈등의 첨단을 겪는 것이 바로 요즈음의 세상이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갈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해소하기 위해 협상을 하거나 한편에서 아예 승복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갈등이 조금 있을 것 같으면 약자는 아예 갈등을 원천해소해 버리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중세인 조선 시대에도 갈등은 참 많았다. 그런데 갈등 중에 가장 염려스러운 갈등이 바로 정치적인 생각이 달라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식의 싫다는 갈등이 문제이다. 조선 시대는 지금으로 말하면 여야의 구분이 비록 왕의 통치하에 있었지만, 당쟁으로 인한 좋은 것보다는 좋지 않은 것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임진왜란을 피하려고 파견되었던 조선통신사의 왕에 대한 보고가 어쩌면 그렇게도 다를 수가 있었겠는가? 보는 눈은 다를 수 없었다. 누구나 생각이 있고 비록 이념이나 사상이 다를지라도 국가와 민족에 대한 염려의 눈은 다룰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통신사의 서로 다른 주장은 같은 눈임에도 불구하고 갈등의 당쟁으로 점철되어 7년간의 한반도에서의 참혹한 전쟁의 밭이 되어 유린당하였던 과거를 돌아볼 수 있다. 갈등의 폭이 너무 크다 보니 같은 생각을 가졌음에도 결국은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갈등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사람이 사는 사회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갈등이 아니라 자꾸 누군가가 아니면 누군가의 집단이 생성해 내는 갈등이 보이는 것 같다. 어떤 사안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갈등은 용인될 수 있다.
갈등의 시작이 건전했다고 하더라도 그 갈등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갈등이 아니라 공익의 이익을 위한 갈등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 정부의 각종 정책이 결코 좋은 것으로만 단정을 지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을 암흑으로 몰아넣는 정책은 아닐 것이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처럼 정부의 정책을 막무가내식으로 따라야만 하는 것이 아니기에 정책에 대한 약간의 갈등이 존재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갈등의 근원에 대해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 갈등이 되어야 한다. 자칫 자기 자신을 위한 것에만 집중이 되는 갈등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공익에 기반을 두는 정책이나 협의가 있어야 하지 권한이 있는 권력을 기반으로 하는 갈등은 결국 그 권력에서 내려올 때 심판을 받게 된다.
갈등을 잘 이용하면 국리민복(國利民福)이 될 것이요 잘못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속해 있는 집단까지도 망하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