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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조  경  천
<이곡교회 목사>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이렇게 살아야만 할까요? 우리 청년들의 삶이 어떤 의미가 있어요? ” 어느 한 청년이 설움에 찬 목소리로 던진 물음이다.

어른으로서 참 가슴이 아팠다. 그 청년의 물음 속에 그동안 그가 치열하게 살아왔던 삶이 녹아 있는 듯이 보였다.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멋지게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마치 장벽처럼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에 그는 절망한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삶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 될 것인가 짐작도 못 하는 것처럼 답답한 일도 없을 것이다.

고통이란 오성을 둘러싼 껍질을 깨어 부수는 힘이다. 과일도 씨도 햇빛 비치는 세상에 나오기 위해 땅속에서 스스로 껍질을 깨듯 그대들은 고통을 깨달아야 하는 것 또한 그것은 자기가 자기를 치료하는 쓰디쓴 한 잔의 약이다. 그러므로 순순히 침착하게 그가 주는 약을 마시라.”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에서 나오는 말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행복과 불행, 평안과 고통, 슬픔과 기쁨, 그리고 사랑과 이별, 이런 것들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항상 함께 존재한다. 그러므로 고통으로부터 도피할 것이 아니라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조개가 모진 세월 고통을 품고 영롱한 진주를 만들어 내듯이 내게 주어진 고통을 끌어안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삶의 진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삶은 어떠냐는 것이다.

누군가 산다는 자체가 고통이다. ”라고 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얼까? 어떤 사람은 삶의 의미란 애당초 없다고 말한다. 이 사람은 세상의 삶은 무의미하고 온정도, 배려도, 사랑도 없는 무지막지한 무서운 곳이다.

그래서 나 홀로 세상에 와서 고통스러운 일들을 감당하다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제법 철학적인 삶을 살다가 간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삶은 온통 우연의 연속이고, 그 우연을 연결하는 목적의 실 따위는 없기에 일관된 서사를 구성하지 못한다.

그런데 삶을 또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자체가 어떤 우연이 아닌 나에게 주어진 선물로 보는 것이다. 태어나서 죽기까지를 일생이라고 하는데 일생은 인간에게만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다.

하루살이가 있고 한해살이가 있으며 나무나 식물 등은 겨울에 거의 죽은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끈질긴 생명력은 겨우내 추위에 떨었던 아픔을 견디며 새봄에 다시 생명력을 키우기도 하면서 꽃을 피운다.

자연의 순환적 삶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은 어쩐지 자연적인 삶보다는 인위적으로 설정한 삶이 자신이 선택했던 아니었던 방향성은 천차만별이다.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 대부분 사람은 기본적인 삶의 배경을 떠 올린다.

소위 금수저라면 어떠했을까? 어려움 없이 부모의 권력 배경이든 아니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배경이든 하지 못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적인 두뇌의 뛰어남이든 금수저라고 불릴만한 사람들과 흙수저들과의 비교를 생각해본다.

인생에서 삶의 지향점을 가지는 대부분 사람은 삶의 방향에 대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과 훈련을 반복해야 하고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이러한 삶의 과정을 도외시하고 행복을 우선으로 하는 것에만 방점을 찍고 어려움과 힘든 것을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어려움도 자신에게 닥친 행복의 전초라고 생각하면 된다. 행복은 인생의 최고 목표일 것이지만 그냥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지금 청년들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좌절하는 등 고통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즐길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삶의 방향을 바꾸면 어느 땐가 고통은 기쁨이 되고 추억이 될 것이다. 요즈음 경제가 힘들고 청년들은 더욱더 힘들다. 하지만 힘을 내고 용기를 갖자.

삶의 방향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목표를 미래지향적으로 설정하면서 많은 좌절을 겪을지라도 헤쳐가면서 내일을 기약하는 삶의 방향을 바꾸어 생각해보자. 청년들이여 다시 한번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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