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도 영
<예원예술대학교 교양학부장/ 본사 자문위원 >
성수산(聖壽山)은 전북 임실군의 성수면 성수리와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남서쪽의 장수군 팔공산과 이어지는 산줄기로 무주의 덕유산에서부터 회문산으로 뻗어내린 노령산맥 지맥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 사면에서 발원한 하천은 섬진강 본류를 이루고 서쪽에서 성수천, 남천 등의 하천이 발원해 오봉저수지, 성남저수지 등을 만든다. 『여지도서』(임실)에 "성수산은 팔공산에서 뻗어 나온다. 관아의 동쪽 30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가지사(迦智寺), 심원사(深源寺), 상이암(上耳菴)이 있다고 하였다.
『호남지도』에 현의 동쪽 끝 장수와의 경계에 성수산이 묘사되어 있으며 아래로 상이암 등의 사찰이 함께 그려져 있다. 그 밖에도 『해동지도』, 『대동여지도』(17첩 4면) 등의 지도에 '성수산'이 표기되어 있다.
이러한 성수산은 고려와 조선의 건국설화가 얽혀 있는 명산으로 산의 높이는 876m로써 그리 높지는 않지만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으로 둘러쌓여 있어 정상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여 사방으로 전망이 빼어나다.
상이암(上耳庵)은 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 성수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의 말사이다.
서기 875년 신라 헌강왕 때 가야선사가 창건하였다. 조선 태조3년(1394)에 이르러 각여선사가 조정의 명을 받고 크게 중수, 인근에서는 가장 웅장한 사찰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병화를 입어 전소되었고, 1909년 10월에서야 김대원 선사가 재건하였다. 이후 6.25 동란 당시 또 한번 전화를 입어 소규모 암자로 명맥을 이었으나 최근에서야 신도들의 보시로 사찰로써 모습을 일신하고 있다.
상이암 절 입구 비각은 어필각(御筆閣)으로, 비각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이고 풍판을 댄 맞배 형식의 목조 기와집이다. 자연 기단 위에 원형 주초를 놓고 원형 기둥을 세운 건물이다. 내외부에는 단청을 칠해 장엄하다.
어필각 안에는 조선조를 건국한 이성계가 쓴 ‘삼청동(三淸洞)’을 새긴 비석이 있다.
상이암은 무량수전과 칠성각, 산신각을 중심으로 요사체 1동과 창고 및 비각 등이 배치되어 있다. 상이암에 들어서면 성수산 봉우리와 이어져 중심 전각인 무량수전이 인공 기단 위에 위치해 있다. 산신각에서 약각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면 혜원(慧月), 두곡(杜谷)스님을 비롯한 3기의 부도탑이 있으며, 그곳에서 마당으로 내려올 수 있다.
천년을 훨씬 넘긴 상이암은 왕이 되리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 877~943)이 초야에 묻혀 살았던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풍수도참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도선대사(道詵, 827~898)는 성수산을 보고 ‘천자를 맞이할 길지로 손색이 없는 곳’이라 탄복하고 송도(개성)로 올라가 초야에 묻혀있는 왕건에 백일기도를 권하자 왕건은 도선의 뜻에 따라 이곳에 내려와 목욕재계하고 백일기도를 기도드렸다.
백일기도를 끝내고 못에서 목욕을 하던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하늘로부터 용이 내려와 몸을 세 번 씻어주고 승천하였다고 한다. 이에 왕건은 그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여 '환희담(歡喜潭)'이라 친필로 바위에 새겼고, 도선은 암자를 지어 ‘도선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이성계와 인연이 깊은 절이기도 하다. 이성계가 이곳에 머문 것은 조선을 건국하기 위한 준비를 하던 때이다. ‘산고수려일고려(山高水麗日高麗)’라 했다. 산이 높으면 반드시 물이 맑을 수밖에 없고, 골이 깊으면 물의 흐름이 길 수밖에 없다. 팔공산을 두고 동쪽은 산고수장(山高水長)의 장수(長水)요, 서쪽은 운심수청(雲深水淸)의 운수(雲水)가 자리하고 있다.
산은 언제나 땅을 사방으로 가르지만, 물은 항상 사방의 것을 하나로 합쳐 끊임없이 대해로 흐르게 한다.
이는 곧 저절로 흐르고 가르는 자연의 이치이자 우주의 무한한 기운이 가득 차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산은 하늘로 솟고, 물은 바닥으로 유유히 흐른다.
이 무한한 자연의 순리와 호연지기를 정신과 신체 속에 축적하여 솟을 자리에서는 한없이 솟고, 자취없이 흘러야 할 자리에서는 유유히 흐르는 힘을 함축해 두자는 것이 지난날 이성계의 꿈이었다.
(문화재청 자료(호남문화유산 이야기 여행, 2011년) 참조.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