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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권에 진출한 가야세력 - 장수군 가야고분 ①


 김 도 영
<예원예술대학교 교양학부장/본사 자문위원>
 
장수지역에는 가야고분이 산재해 있다. 1996년 장수 삼고리 고분군은 백두대간 산줄기 서쪽인 금강상류지역에 6세기 초엽까지 백제가 아닌 가야문화를 기반으로 발전했던 고고학적 자료를 제공하여 가야 세력의 존재를 입증해 준다.

2003년에는 삼봉리 고분군과 동촌리 고분군에 대한 학술조사가 이루어져, 가야계 중대형 고분이 분포되어 가야문화를 기반으로 삼은 세력집단이 존재하였음을 증명해 주었다.

이처럼 장수군이 가야 세력의 집단 거주지였었음은 장수군의 지리적 특징을 살펴보면 이해가 간다.

전북 동부 산악지대에 위치한 장수군은 남쪽에 남원시, 서쪽에 임실군과 진안군, 북쪽으로는 진안군과 무주군, 그리고 동쪽으로는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 등과 접해있다.

또한 진안고원의 일부로서, 모든 지역이 해발 400m 이상의 높은 고원지대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행정구역 상 장수군에 편입되어 있으나 지형 상 남원시와 동일한 지역권을 형성하고 있는 남서쪽의 산서면에만 구릉지대가 발달해 있다.

한편 장수군의 경계를 이루는 동쪽에는 덕유산에서 백운산까지 연결되는 백두대간의 준령이 가로막고, 북쪽에는 두문산·봉화산, 서쪽에는 천반산·성수산·팔공산, 남쪽에는 신무산·장안산 등의 고봉들이 둘러 에워싸고 있다. 이 고봉들은 장수읍 남쪽에 위치한 수분치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장수군의 전 지역을 금강과 섬진강 수계권으로 갈라 놓고 있다.

금강의 최상류에 위치한 장수군은 장수천과 장계천이 각각 북쪽으로 흘러가며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호남과 영남지방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백두대간 정상부에 위치한 월성치, 육십령, 잣재 등의 고개를 중심으로 교통로가 선상으로 연결되어 있어 교통상의 요충지를 이룬다. 이와 같은 환경을 바탕으로 그동안 장수군에는 다양한 문화유적이 분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장수군의 문화유적은 1975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실시한 문화유적조사를 시작으로 전북대와 군산대박물관 등이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익산-함양간 고속도로 문화유적 지표조사 등 많은 조사연구를 통해 구석기시대 유적을 비롯하여 지석묘 14개소, 85개소의 고분군 등 많은 문화유적과 가야계 중대형 고총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장수군 가야 문화 발굴 작업은 군산대 박물관이 나서 1996년 천천면 삼고리 고븐군을 시작으로 장수군 전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장수읍 동촌리 일대에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고총이 가야의 것임은 봉분 구조에서 드러났다. 봉분의 크기가 20~30m에 이르는 대형 고분이 200 여기나 발견된 것인데, 백제에는 이러한 고분은 왕릉 빼고는 없고, 가야에서도 대형 고분이 군집을 이루기는 했으나 이처럼 한 곳에서 200 여기가 발견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종래의 발굴조사를 통해, 수혈식 석곽묘는 백제에 정치적으로 복속되기 이전까지 금강의 상류지역에 기반을 두고 발전했던 토착 세력 집단의 주된 묘제로 밝혀졌다. 동시에 유구 및 유물의 속성이 백두대간 동쪽의 가야 고분과 서로 연계된 것으로 밝혀져 그 조영 집단이 가야문화를 기반으로 발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마한 이래로 백제문화권에 속했던 것으로 인식된 이곳의 토착 세력 집단이 백제가 아닌 가야 문화를 기반으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끈다. 더욱이 전북 동부 산악지대에서 최대의 교통 중심지인 진안 용담댐 수몰 지구에 대한 발굴 조사를 통해, 이곳으로 진출한 가야 세력과 당시 백제와의 역학 관계를 살필 수 있게 되었다.
(문화재청 자료(호남문화유산 이야기 여행, 2011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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