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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즐거움 행복한 생활


김 은 영
 <늘사랑교회 목사/ 소통과공감 심리상담사>
 
이제 며칠 후면 추석이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찾아뵙지 못했던 친지와 어른들을 뵈어야 하는데 이번 추석에 방역 당국과 지자체에서는 이동을 꺼려서 오고 가는 것을 자제할 것을 권고해 만나는 즐거움과 설렘이 조금은 아쉬울 것 같다.

인생에서 만남이란 정말 소중할 수 있다. 태초에 신의 창조물이라고 했던 종교적 윤리를 적용하면서 신의 정신적 지배 세계를 토대로 육신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는데 생물학적인 부모님은 물론이고 신의 가치를 뛰어넘은 사랑과 은혜의 만남이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해서 첫 출발은 자신을 다스리고 이후 가족을 다스린다고 했는데 가족과 만남이 사실상 우리 인생의 첫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과 만남이 생애의 첫 만남이지만 행복한 만남이 대두분이겠지만 불행의 씨앗이 잉태되는 만남이 있어서 안타깝게 하기도 한다.

사실을 인지해 보면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끔찍한 만남이 성인이 되어서 범죄가 되었던 아주 일부 극소수이긴 하지만 불행한 만남의 씨앗이 잉태되어 우리를 슬프게 했었던 사건이 있었으니 만남 자체가 불행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만남은 인륜이기 전에 천륜이고 가장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이 뒷받침되는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만남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기본조건이 있을 것인데 그것은 바로 사랑과 나눔 그리고 평생 서로를 안위해 주는 것일 수 있다.

현대인들은 정말 바쁜 생활로 눈코 뜰 새가 없다고 표현한다. 물론 먹고 살기 위해 뛰어야만 할 수 있는 생활이지만 어느덧 인생의 뒤를 돌아볼 나이가 되면 회한이 앞서곤 한다. 바쁜 인생에서 과연 나 자신이 했었던 일이 무엇이었는가?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현대인들이 작은 쉼의 시간을 가지면서 서로를 돌아보는 가족 간의 만남이 자주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 민족의 명절인 추석에 어른들을 찾아뵙는 풍습이 행복한 생활을 위한 만나는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즐거운 만남 행복한 생활은 자신이 엮어갈 행복의 길일 수도 있다. 요즈음 현대인들은 독신적 생활에 익숙해 있고 또 가족이라고 해도 자신을 포함한 그야말로 위아래를 생각해 볼 처지가 없는 독립적인 세대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추석을 맞이하여 어른들을 찾아뵙는다는 한 가닥 희망의 메시지는 우리 사회의 생활 흐름에서 훈훈한 정으로 남는 행복 일번지의 소식이다. 결국 행복은 자신이 행하는 만큼의 생활에서 찾을 수 있기에 먼저 만나는 즐거움으로 조건을 내세우고 싶다.

이번 추석에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이웃들과 함께 하는 만남이 코로나19로 인해 어렵게 되어 난감하기만 하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생활패턴을 바꿨다고는 하지만 우리 민족 고유의 민속 명절의 풍습까지 바꿔버릴 정도의 위력이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방역을 위해 개인위생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생활로 이어진다면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잠깐 방심하는 사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너도나도 무의식에 빠져 버린다면 확산세가 2차 확산세보다 더 늘어날 수 있는 개연성이 있기에 조심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도 우리의 만남을 막을 수는 없다. 직접 대면해서 만나는 것을 추석 명절이 아닌 다른 날을 변경해서 만날 수 있지만, 여건이 허락하질 않아서 과학 문명의 총아인 핸드폰의 영상화면을 통해 만남을 권유하는 당국의 입장이 일면 수긍이 가기는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직접 만나면서 회포를 풀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가족의 안녕에 대한 염려를 묻고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만남이 중요하지만, 이번 추석에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만남은 즐거움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만난 뒤에는 정말 행복한 미소가 있어야 한다. 전북도내 고향을 찾아오는 출향민들을 환영하면서 건강한 만남으로 뒤안길에는 변고 없이 좋은 일만 함께하기를 원한다.
만남으로 즐겁고 행복한 생활이 이번 추석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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