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경 로
<본지 논설위원/ 반태산작은도서관장>
우리나라는 고대시대에 일찍이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생활 속의 불교를 정착해 갔다. 삼국시대에 받아들였던 불교의 중흥은 통일신라를 거치면서 고려시대에 정점을 맞이하다가 결국 쇠락의 길에 접어들면서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의 일환으로 불교신앙이 산중으로 내 몰리게 되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위대한 참승과 대사들이 즐비하여 우리민족의 불교에 대한 의미가 각별하였음에도 정치적인 이유와 일부 욕심 많은 사람들에 의해 문제가 발생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조선시대에는 형식적으로는 숭유억불이라고 하여 민간에서는 성리학을 위주로 하여 불교를 억압하였지만 내용적으로는 조선왕실에서는 불교를 숭상하면서 일부 승려를 국사(國師)라고 하여 극진히 대접하였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불교계가 단결하여 승병들이 직접 나서 의병을 조직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일선에 나갔던 민족종교였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지만 일제에 의해 불교신앙이 왜곡되고 대처승이 남발되면서 사회문제화가 되곤 하였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외세종교를 대항하기 위해 동학이나 대종교 및 원불교 등이 토착종교로 생성되었고 전북 김제에서 시작된 증산교 등이 빠른 속도로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런데 우리사회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신분차별이나 계급적 통치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억압에 눌려 있고 당파로 인한 폐해가 극에 달하면서 새로운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생각하던 차에 천주교 전래가 시작되면서 우리사회는 이념의 양극화를 이루게 되었다. 물론 조선정부는 흑백논리로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고 지금은 희생당한 사람들을 성인 반열에 올려놓고 추앙하기도 한다.
근대말에 있어서 기독교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생활 속 종교로 들어오면서 학교와 병원 등을 설립하고 민중들과 함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선택받은 구원을 통해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동안 억눌렸던 일반 민중들은 이러한 새로운 사상과 이념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의 기독교는 서양 어느 곳에도 못지않은 대규모의 신앙집단으로 발돋움 하게 되었다. 세계 1위에서부터 10권내의 교회가 대부분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종교적인 신앙은 다른 나라처럼 첨예한 갈등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일부 국가에서는 종교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명예살인등 가족 간에도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지만 우리사회는 가족 간에도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큰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가족사회이며 사회 관습인지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살만 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질타와 멸시를 받는 일이 종교집단에도 나타났다. 철저한 개교회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개신교에서 성직자들의 일탈된 행위로 인해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또 일부 대형교회에서는 북한에서나 있을법한 세습이 자행되고 있어 일반인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곤 한다. 사람이 모여 사는 집단이나 조직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신앙을 가진 종교집단은 엄격한 윤리와 도덕의 잣대는 물론이거니와 신앙 그 잣대로 자신들의 종교심성을 일깨워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은 자신의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하지 못하여 안달이 난 모양이다.
세습으로 교회를 물려주는 자들이여 부끄러운 줄 알라!
목사 자신이 교회를 일구어냈다고 자랑하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것이요, 해당 교회의 신도들을 세뇌하고 왜곡하는 것일 따름이다. 목사들을 비판하면 무슨 큰 죄를 짓는 것처럼 신앙을 빙자하여 신자들의 마음을 괴롭히는 일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각 종교집단들은 신앙을 빙자하여 종교를 사유화함으로서 더 이상 신을 모독하지 말고 인간 본연의 자리에서 신을 받들면서 같은 신앙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건전한 사고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사고를 일깨워주어야 할 것이다.
최근 종교를 통해 자신의 독점적 지위로 활용하면서 현혹하는 무리들이 있다. 본연의 종교인이 아닌 정치적인 입지를 다지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리들을 현혹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제발 현대사회에서는 과거의 권위를 내세우는 종교적 입장이 더 이상 통하지 않기에 분명한 자기혁신이 필요할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