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은 영
< 늘사랑교회 목사/ 소통과공감 심리상담사>
계절의 여왕은 아무래도 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추운 겨울을 딛고 새싹이 돋아나는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을은 결실을 맺는 계절이라는 표현으로 낙엽이 떨어지고 쌀쌀한 바람이 부는 온도의 일교차가 매우 큰 계절이다.
가을은 결실을 맺는다고 하지만 지난여름의 태풍을 이겨내고 무더위와 싸워 값진 열매를 맺는 계절이 또한 가을철이다.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이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예전에는 가을이라고 했을 때의 느낌은 쓸쓸함보다는 풍성함이 더 다가왔다. 가을에 속해 있는 추석 명절이 우리의 정서를 통해 마음의 풍족함을 가져다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 여름의 태양 빛이 점차 시들어 가면서 가을의 선선함이 피부에 와 닿을 때 계절의 안락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계절의 안락함과 가을의 풍성함을 맛보기도 전에 아직도 코로나19로 정체성을 찾기 어렵게 되어 있고 더구나 마스크 착용이 일반화되면서 호흡에 여간 곤란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선선한 가을 날씨에 마스크 착용 또한 무더위를 피할 수 있지만, 아직도 마스크의 불편함은 가을이라고 해서 달라진 것이 없다. 가을의 낭만과 추억은 그야말로 예정일을 생각하는 추억일 따름이 되었다.
그리고 여성들이 차지하는 맵시는 사실상 여름철보다는 가을철에 느끼는 은은한 맵시가 더욱더 여성스럽게 느껴진다. 많은 패션 감각의 여성들이 가을이 되면 나름대로 추위와 맵시에 신경을 쓰고 있다.
가을은 겨울의 동장군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의 계절로도 알려져 있다. 단풍이 붉게 물드는 아름다운 산야의 풍경을 말할 것도 없고 지금 가을 들녘의 손질과 함께 산간 지역에서는 겨울나기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을 보면 가을철이 길지 않은 것이 요즈음의 통설 같기도 하다.
사실상 가을은 주변 관광지에 놀러 다니는 계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 이전만 하더라도 주변 국립공원의 산에 단풍이 깃든 모습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넘쳐났다. 그야말로 여행의 계절이기도 하다.
예전의 부모님 세대에서는 여름철 고생했던 자신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기 위해 동네별로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놀러 다닌 기억이 새롭다. 물론 그 속에 우리의 어린 시절이 추억으로 묻어나는 상상이 아닌 현실 속의 정담이다.
그런데 부모님 세대는 한을 가진 세대였는지 관광지에서 풍경이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말하자면 잘 노는 세대였다. 지금처럼 음향기기나 노래를 할 수 있는 각종 장비가 없을지라도 장구와 북 하나면 충분했다.
그야말로 장구 치고 북 치고 노니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문뜩 떠오르면서 이 가을의 풍성함으로 조금이라도 한을 달래며 어려웠던 생활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가을의 쓸쓸함이 옷깃을 여미고 있지만, 계절의 순환은 반복되는 것이기에 해마다 다가오는 가을의 쓸쓸함은 공통분모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가을에는 좀 더 변화의 바람을 맞고 싶다. 가을의 쓸쓸함은 같을지언정 맞바람을 맞는 쓸쓸함을 더욱더 풍성해지기 위해 마음의 변화 속에 이 가을을 지내고 싶다.
‘이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어느 시인의 소망처럼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신앙을 가진 단어의 하나로 어떤 신이 되었던지 자신의 소망을 빌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 가을의 쓸쓸함도 여미는 옷깃에 저물어 간다. 벌써 겨울 초입에 들어서면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이 가을에도 예년처럼 결실을 바라보면서 한해의 열매를 맺는 심정으로 오늘도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