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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줄타기


 윤 현 정
<예원예술대학교 교수/이학박사>
 
독자들은 영화 '왕의 남자'에 나왔던 아슬아슬한 줄타기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악사의 반주에 맞춰 3m 높이의 줄 위에서 부채 하나를 들고 관객들과 한 두 마디씩 대화를 하면서 위험천만한 묘기를 부리며 줄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들은 이러한 아찔한 묘기를 손에 땀이 젖고 마음을 조이며 관람한다.

예로부터 줄타기는 많은 사람들이 널리 즐기던 활력 넘치는 한국의 전통 공연예술로써 단순히 두 지점 사이에 공중에 매단 가느다란 줄 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와 발림을 섞어가며 줄 위를 걷는 것만이 아니라 노래·춤·곡예 등의 다양한 예술과 재주를 부리며 재담을 늘어놓는 종합예술이자 놀음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줄타기는 외국의 곡예기술에 중점을 두는 줄타기와는 달리 줄만 타는 몸 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음악 반주에 맞춰 노래와 재담을 곁들여 줄 타는 곡예사와 바닥에 있는 어릿광대가 서로 재담을 주고받으며 한편으로는 구경꾼과 함께 어우러진 놀이판을 이끌어간다는 특징이 있다. 즉 줄타기 곡예사와 어릿광대 사이에 대화를 이어 가며 관객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의 유사한 줄타기 예술과는 차별화된다.

그러므로 한국의 줄타기는 일방적으로 재미와 짜릿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연행자와 관객들 사이에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예능으로써 삶의 애환과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역설적 패러독스를 통해 관객을 포함하여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희극적 공연의 분위기에 스며들고 종국에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줄타기 공연은 연행자와 관객 모두에게 즐거움과 정신적 고통의 망각을 선사한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줄타기는 고유하며 그 가치가 명확하다.

줄타기 연행(演行)은 야외에서 하는데, 혼자서 하는 행위가 아니다. 줄 위를 걷는 줄타기 곡예사가 재담과 동작을 하며 노래와 춤을 곁들이는 중심 역할을 하지만 지상에서 줄타기 곡예사가 하는 곡예와 재담에 맞춰 그 놀음에 반주를 하는 악사들이 있으며, 곡예사와 대화 상대가 되어 재담을 받아주는 어릿광대가 함께 어우러져 신명나는 한 판을 펼친다.

줄판 전체는 오후 내내 이어지기 때문에 관객으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흥취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려면 곡예와 재담과 음악으로 프로그램을 세심하게 구성해야 한다. 줄타기 공연자들은 줄광대, 어릿광대, 삼현육각재비로 나누어진다.

줄 위를 마치 얼음지치듯 미끌어지며 나가는 재주라고 하여 ‘어름’ 또는 ‘줄얼음타기’라고도 부른다. 줄광대는 주로 줄 위에서 갖가지 재주를 보여주고 어릿광대는 땅 위에 서서 줄광대와 어울려 재담을 한다. 삼현육각재비는 줄 밑 한편에 한 줄로 앉아서 장구, 피리, 해금 등으로 광대들의 동작에 맞추어 연주한다.

줄타기는 간단한 곡예로 시작하여 줄에서 오르락내리락 뛰고, 구르고, 재주넘고, 줄 위에서 다리를 꼬고 앉는 등 점차 더 어려운 묘기로 나아가며 약 40가지의 갖가지 줄타기 기술을 선보인다.

줄타기는 행사의 안전을 비는 ‘줄고사’로 시작하여 여러 기술을 보여주어 관중의 극적인 긴장을 유도한 이후에 ‘중놀이’와 ‘왈자놀이’를 통해 관중의 극적 긴장을 이완시키고 흥미를 유발토록 한다.

그리고 다시 여러 기예를 통해 관중의 극적 긴장을 유도했다가 살판을 통해 긴장을 해소한 후 마무리한다. 이러한 공연 내용을 기본 바탕으로 하되, 상황과 장소에 따라 다소 변화를 주고 있다. 줄타기를 할 때에 파계승과 타락한 양반을 풍자한 이야기로 익살을 떨거나, 바보짓이나 꼽추짓, 여자의 화장하는 모습 등을 흉내 내어 구경꾼들을 즐겁게 하는 것 등이 그러한 예이다.

줄타기에 관한 기록은 고려시대(918~1392)에 처음 등장하는데, 주로 음력 4월 15일이나 단오날, 추석 등 명절날에 공연이 이루어졌으며, 개인이 초청하여 공연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 말기에 흥성했다가 일제 강점기에 그 맥이 잠시 끊어졌으나 현재까지 꾸준히 그 기예가 전수되고 있다.

1976년에 정부는 줄타기를 국가무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하여 더욱 체계적으로 전수하고 그 명맥이 이어오다가 문화유산적 가치가 독특하고 뛰어나 2011년 UNESCO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줄타기보존회와 국가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김대균(金大均)은 한국의 고유한 줄타기를 전승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1991년에 설립된 줄타기보존회는 이 전통 공연예술을 보호하고 널리 전파하고 있다. 오늘날 줄타기 공연은 특히 봄과 가을에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는 지역 축제에 자주 초대받아서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고 웃게 해준다.

줄타기는 거의 모든 지역 축제에 초대되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고 친숙하게 느끼는 전통 공연예술 중의 하나로 다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선다면 우리는 신명나는 한국의 전통줄타기 공연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점이 하루라도 빨리 오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출처 : 《국립무형유산원》 홈피 자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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