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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에 대하여


 최 청 미
<전주서머나교회(기장) 담임목사/ 팽나무작은도서관 관장>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해졌다. 사람은 참으로 간사하여 더울 때는 더워 죽겠다! 하고, 추우면 옷깃을 세우고 목을 움츠리면서 추워 죽겠다! 고 한다. 옷이란 참 이상해서 어떤 사람이 어떻게 입었느냐에 따라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더욱이 벗은 수치를 가리고 추위를 막으려는 기본 목적을 넘어 입은 옷이 남들의 시선과 얽히면 옷이란 묘한 것이 되고 맙니다. 부자가 고가의 사치스런 옷을 입으면 사람들은 ‘돈 자랑한다. 옷만 화려하게 입으면 뭐가 달라지나?

강아지 목에 진주목걸이인 셈이지.’라고 매우 나쁘게 비아냥거린다. 사실은 고생하면서 돈을 모은 부자가 모처럼 한번 입고 나온 것인데 사람들은 시기심 때문에 부자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한다.

반대로 가난한 이가 제대로 갖춰 입으면 ‘자기 주제도 모르고~~~~ 저러니 언제 가난을 면하겠어?’라고 비쭉댄다. 그 가난한 사람도 늘 초라하게 입으면 존재까지 초라해질까 염려하여 고심 끝에 어렵게 입은 것이건만 그 역시 용납하지 못한다.

그러니 부자는 부자도, 가난한 이도 거울 앞에서 망설이기는 매일반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세간의 눈초리가 곱지 않기는 마찬가지인데 부자가 초라하게 입으면 ‘그 돈 다 아껴 뭐하려고 저러지? 무덤에 싸가지고 갈 것도 아닌데~~~'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이 초라하게 입으면 '아무리 가난하지만 이런 자리에 저렇게 입고 오면 되나? 예의가 있어야지. 요새 옷이 얼마나 싸다고, 그래 정장도 한 벌 없나?'라고 수군댄다. 이러다보니 참 제대로 맞춰 입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옷에 대한 유감을 나누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옷을 걸친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이 바르면 옷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예컨대 어떤 부자가 고가의 옷으로 자신의 부요함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잘 다스리고, 마음으로 드러내는 삶이 더 중요함을 깨닫는다면, 그런 부자는 옷 잘 입어 잘 보이려는 생각이 없으니 자유로울 것이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옷이 아닌 마음의 바름이 자신의 존재를 버티는 것임을 깨닫는다면, 옷 때문에 고통 받지 않는다. 수치를 가리고, 따스하거나 시원해서 좋고, 활동하기 편하다면, 거기에 보태어 남의 마음에 부담을 안줄 정도로 단정하다면 충분하다.

부자가 그 부유함에 비해 소박하게 느껴질 정도로 입는다면, 가난한 이가 초라하지 않을 정도로 단정하게 입는다면, 사람들은 모두 그 옷차림에 대해 수긍하며 말한다. ‘참 잘 입었네. 단정하기도 하고, 튀지도 않고, 마음이 드러나는 것 같아...’라고 말하지 않을까?

사실 부끄러운 것은 옷차림이 아니다. 마음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성서에 보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여 에덴동산에 살 때, 그들은 옷을 입지 않았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는데 이들이 신의 뜻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후에 자신들이 벗었음을 알고 부끄러워하면서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치부를 가렸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지금까지 죄를 짓지 않았다면 의상 디자이너, 모델, 의류제조업자 등은 생기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치부를 가린 것은 결국 그들의 마음의 죄를 가린 것이다. 마음을 가렸다는 점에서 아담과 하와는 요즘 우리들보다 나은 이들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요즘은 마음으로 인해 수치를 느끼기보다는 겉모습으로 인해 수치를 느끼는 듯하다. 텔레비전 토크쇼에 나온 출연진들이 과거라면 부끄러워 입 밖에 내지도 못했을 말들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예컨대 자신이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한 이야기, 증오, 부부갈등, 유혹을 받은 일 등을 온 국민 앞에서 말하는 것이다. 옳지 않은 말만 들어도 귀를 씻었다는 우리 조상들의 수신에 비하면 정말 부끄러움도 모르는 세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마음의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느끼지도 못하는 이들이 뜻밖에도 겉모습에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눈이 작은 게 부끄러워 눈 트임을 하고, 코가 낮은 게 부끄러워 코를 높이고, 얼굴 각진 것이 부끄러워 턱을 깎고, 값싼 옷이 부끄러워 카드빚을 내서라도 명품을 입으려한다.

못 생겨서 부끄러워 대인기피증을 앓고 진정으로 부끄러운 것은 마음에 있다. 종종 입음새를 보고 요조숙녀인 줄 알았다가 그 입에서 험한 말이 절제 없이 튀어나올 때 충격을 받고 신사인 줄 알았다가 치한의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놀라는 시대가 되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것은 마음에 있다. 코트 깃을 세우고 목에 아름다운 스카프를 두르는 것보다 ‘마음을 아름답게 하리라’는 생각으로 다시 한 번 결심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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