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경 로
<본지 논설위원/ 반태산작은도서관장>
고대사회에서 전승되어온 문화와 예술이 지금도 그 유래에 따라 계속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고대 제천행사 등이 기록유산과 전승에 따라 약간은 달라졌을지 모르나 원래의 뿌리는 지속되고 있다.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삶의 지난(至難)한 어려움이 문화와 예술로 극복하면서 이에 따라 문화예술이 산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고대에서 시작한 것이 계승되고도 있지만 새로운 장르의 창작예술이 만들어지고 있기도 하다.
동서양을 교류하면서 우리 사회가 세계를 지향하는 글로벌화가 되면서 문물의 교류가 많아지고 다양성을 기저로 하여 상호교류뿐만 아니라 문화의 수입을 나라의 형태별로 다르게 표현하기도 한다.
미디어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은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이 방송과 인터넷 환경을 배경으로 하는 각종 영상물 등이 새롭게 접근하면서 극영화를 비롯하여 음악과 무용 그리고 각종 이벤트의 다큐멘터리 형식 등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중심이 되고 있다.
지금도 현대사회의 문화를 이어가는 수많은 장르가 개발되고 발전되고 있지만 단순하게 시작하는 예전의 문화 역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근본을 이어가곤 한다. 예전에는 선진국형이라고 할 수 있는 주변국들의 각종 문화콘텐츠를 베끼는 것이 일상이었다.
지금도 한류 문화를 기점으로 일부 국가에서는 정당하게 지식재산권이라는 이름의 콘텐츠 소유권을 수입하여 진행하고 있지만, 일명 짝퉁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베껴가면서 자국의 문화에 대한 이미지를 홍보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전라북도는 문화와 예술을 근본으로 갖는 고장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계승되어 온 각종 문화콘텐츠가 지금도 유형별로 계승되고 있으면 특히 전주에는 이러한 커다란 문화유산을 뒷받침하는 국립 유형유산원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바로 이러한 각종 장르별 문화예술에 대한 창작활동이 매우 저조하다는 것이다. 창작은 전통의 가치와 미래를 아우를 수 있는 현대문화의 발전적인 토양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창작의 장르별 탄생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지자체나 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각종 공모를 통해 창작품의 새로운 가치를 일깨워준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공모전의 창작은 매우 이상적인 관점을 갖는다. 신예의 창작문화예술작품이지만 참신하면서 아직은 미완성 작품을 좀 더 다듬어 갈 수 있는 배려의 공모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오직 1등만이 공모에 선정되는 성적 순위의 줄 세우기로 인해 도전적 문화의 창작작품을 하고 싶은 작가들이 쉬운 포기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일 뿐이다. 물론 좀 더 갈고 닦을 수 있는 배움의 길을 통해 전문적인 창작의 실력을 키울 것을 제언할 수 있지만, 요즈음은 그것 역시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공연예술과 전시문화의 특징상 예술 세계가 중세 이후 활성화되던 그 시절의 작품을 기준으로 조명받다 보니 현대의 시각적인 흐름과 창작의 가변성은 판단하는 사람들에 의해 매우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창작작품에 대한 공모의 설정이 장르별로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은데 이를 하나로 묶어서 전체를 통합하여 창작에 대한 장르 구문 없이 선정되다 보니 과연 창작에 대한 기본개요는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직 문화와 예술의 전문성이라고 강조하는 음악과 국악, 그리고 연극과 무용 등의 창작작품은 음악의 선율과 연극의 대본 그리고 무용의 안무 등에서 확실하게 나타낼 수 있다.
공연문화의 창작은 미래문화 산업의 핵심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잘 갖추어진 곳에서의 창작 공연작품이 눈에 뜨이고 있지만, 지자체에서의 창작 공연예술 역시 지역을 근간으로 하는 예술의 근본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전문적인 예술인들이 어느 지역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창작을 하기 위한 환경과 자기 분야의 자부심과 대중의 관심이 더 높은 창작 의욕을 북돋아 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