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 성 근
<전, 동북초등학교 교장>
공부라고 하는 단어를 떠 올린다. 공부라고 하면 일단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수업을 받으면서 하는 일상의 행위를 공부라고 한다. 그래서 일상에서 학생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공부 열심히 하느냐?’이다.
사실 공부라고 하는 것은 배우고 가르침에 있어 인생을 역전 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공부를 위해 두뇌의 타고 남을 인정하기도 하는 선천적으로 똑똑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주요 요직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경제적으로 가난해도 생활이 궁핍해도 자녀 중에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둔 가정의 부모들은 다른 경제적 상황보다 우선하여 자부심을 느낀다. 그만큼 공부를 잘하면 미래의 자녀들이 차지하는 직업이나 위치가 부모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교장 시절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보면 확실히 관심이 가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의 제도적인 교육 시스템이 공부에 우선을 두고 학습의 결과로 아이들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결국,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지금까지는 대접받고 성공할 수 있는 개연성이 매우 큰 것이다.
이렇게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성장기에 올바른 지식과 생각으로 사회의 선을 행하며 자신 역시 사회구성원 중에서 최고이지만 최선을 다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공부에 임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발휘하게 된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공부 잘했던 사람들의 일탈 행위를 보면 그만큼 근저에 가지 못했던 일반인들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단순한 죄가 아닌 사회현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관심 있는 사회범죄를 저지르는데 우선하고 있는 때도 있다. 고급 범죄의 대명사들은 이렇게 공부 잘했던 사람들이 차지했던 경우가 있다.
우리는 인생 공부라고 하는 말을 자주 한다. 이것은 제도적인 학교에서의 교육과는 달리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회현상이나 접해 보지 못했던 사실들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다. 그것이 자신을 옥죄든 아니면 새로운 세계를 향해 가면서 인생의 실패를 맛보던 새로운 인생의 경험을 토대로 하는 미지의 사회현상에 대한 말의 어원이다.
인생 공부는 이처럼 다양한 사회에서의 경험을 산물로 여긴다.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뛰어든 사업이나 활동을 하다 보면 순리적인 것이 아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런 사안들을 가로막으면서 뒤를 돌아보게 한다. 결국, 쓴 입맛을 다질 때 하는 소리가 ‘인생 공부 잘했다.’라고 하는 소리이다.
이러한 인생 공부는 재충전과 재도전을 위한 경험의 산물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고 스스로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 공부이다. 인생의 뒤안길을 살펴보면 이러한 인생 공부의 경험을 다들 한 번씩은 해 보았을 것이다.
잘난 부모를 만나거나 잘난 자신의 두뇌를 자랑삼아 거칠 것이 없었던 성장기를 지나 스스로 인생을 개척했을 때나 성인이 되었을 때도 승승장구하면서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인생의 행복지수 엄지 척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우리 사회에 몇이나 될까?
최근 재벌 2세들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인생 공부를 하고 있다. 탄탄대로의 최고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부러움은 사라지고 초라하게 교도소에 들락거린다거나 아니면 사회적으로 손가락질당하는 경우가 있다. 모두 인생 공부 한번 잘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사항에 대한 반성의 말일 수도 있기에 다시 한번 인생 공부를 논하는 것이다.
학창 시절 참 공부 잘했던 친구들이 있고 썩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오늘의 결과를 놓고 보면 학창 시절의 공부가 인생 전반을 휘감지는 않는 것 같다. 결과를 놓고 공부 잘하는 친구의 성공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친구들의 사회적응력이 뛰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돌이켜 보면 인생 공부는 현재 진행형이다. 100세 시대의 현대사회에서 인생 공부는 경험적으로 긍정적이며 효율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매개체다. 이 세상을 떠날 때 후회 없는 삶을 살았노라고 스스로 위안과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인생 공부를 어떻게 했느냐에 달린 것 같다.
오늘도 인생 공부를 위해 하루의 시작을 위한 발걸음을 디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