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순 영
<행복한피아노음악학원장/ 플루트연주자>
사람이 태어나서 이 땅에서 사는 날이 나이를 기준으로 평균 80세를 잡고 있다. 물론 남녀 간의 평균수명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이를 연동하여 계산해 보면 조금은 바뀔 수 있다.
지금은 건강 100세 시대라고 해서 건강한 몸만 가지고 있으면 100세를 넘길 수 있는 충분한 체력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예전에 60 회갑이라고 했는데 이제 60세 회갑은 노인의 기준에 끼워주지도 않을 지경이다.
옛날에는 의료 관련 내용이 매우 접근하기 어려웠고 또 일반 서민들이 찾는 의료환경은 신분의 계급에 따라 철저하게 달랐기 때문에 질병과 관련된 의학적 삶이 연장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의료혜택을 못 받았던 하층민들이 더 오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던 것은 상위계층의 건강관리에 문제가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은 정치와 사회 부문에서 엄청난 갈등과 분쟁이 있었기에 정신적 고통이 심해져 육신의 아픔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하층민들은 매우 단순했다. 그저 평화스러운 일상에 자신의 밥벌이에만 만족했으니 갈등과 분쟁을 일으킬 사항이 없었고 다만 국가의 위기와 전란에 전투에 참여하는 백성의 일원으로서의 걱정만 있었을 것이다.
조선 시대에 가장 최고의 권력과 부 그리고 건강을 담보로 했던 임금들의 평균수명이 50세도 미치지 못한 것을 보면 이를 잘 방증해 준다.
그런데 요즈음의 현대사회는 어떠한가? 자고 나면 새로운 소식들이 TV와 인터넷을 장식하면서 우리 눈과 귀에 보이고 들린다. 그것도 매우 긍정적이면서 세상을 밝게 보는 소식이 아니라 매우 부정적이면서 생활 속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나 자신과는 무관하게 기쁜 인생을 가져다줄 좋은 일만 내 주변에 닥친다면 이는 가장 큰 보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나 자신과는 무관하게 슬픈 인생을 가져다줄 좋지 않은 일만 내 주변에 닥친다면 이는 가장 큰 슬픔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돈이 최고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현대생활이 삶을 영위하는 최고의 목표가 일에 대한 보람과 긍지 그리고 성취감에 따른 기쁨이라고 할 것인데 요즈음은 그런 용어 외에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그에 따라 돈이 많이 벌리게 되면 기쁨을 가질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반대로 아무리 열심히 살고 싶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자신의 실력과 행태를 보여주고 싶어도 안 되는 현실은 슬픔 속에 지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고 만다. 이러한 현실이 결국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더욱더 슬픔 속에 잠기게 된다.
거창하게 나라를 되찾았던 8·15 광복을 견주지 않더라도 내 주변의 작은 일에 대한 만족감이 있으면 그것은 인생의 기쁨이 된다.
예전에 새해가 되었을 때 덕담으로 ‘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했었다. 결국 기쁨의 가치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부자에 비유한다는 것이 매우 씁쓸했지만, 아무튼 이 또한 현대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기본 가치가 돈과 연계되어 있을 것이기에 큰 비중은 두지 않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매우 복잡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단순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복합적 구조에서는 매우 복잡하지만, 그 복합적 구조에 들어 있는 개별 사안은 매우 단순하기 때문이다. 사회성이 복잡하지만,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인자들은 하나의 개체를 가지고 있는 단순한 존재들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기쁨의 인생과 슬픔의 인생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매일 기쁜 일상이 비롯되면서 다른 한편에서의 슬픈 일상은 동전의 양면을 가지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듯이 슬픔보다는 기쁨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정신이든 육체이든 건강에 좋을 성싶다.
건강 100세 시대를 생각하며 오늘도 기쁜 일만 주변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바람으로 기쁜 인생과 슬픈 인생의 갈림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