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꽃의 웃음소리를 듣고 새의 눈물을 본 적이 있는가?
송나라 휘종 황제는 그림을 매우 좋아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 또한 솜씨가 뛰어난 훌륭한 화가였다. 어느 날 그는 전국의 화공들을 모아 놓고 미술대회를 열었다.
그림의 제목은 “꽃을 밟고 돌아가니 말발굽에서 향기가 난다.”
‘踏花歸路馬體香-답화귀로마체향’이었다.
의미인즉 ‘말을 타고 꽃밭을 지나가니 말발굽에서 꽃향기가 난다.’라는 뜻으로서 황제는 화공들에게 말발굽에 묻은 향기를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주문한 것이다.
향기는 코로 맡아서 체감하는 것이지,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법이다.
시간이 흐르도록 모두가 그림에 손을 대지 못하여 쩔쩔매고 있을 때, 한 젊은 화공이 호기롭게 그림을 제출하였다.
화공들의 눈이 일제히 그의 그림에 쏠렸다.
그림의 내용은 사뿐히 달려가는 한 마리의 말 뒤로 꽁무니를 따라 나비 떼가 뒤쫓아 가는 형상을 그린 모습이었다. 말발굽에 묻은 꽃향기를 나비 떼가 대신 말해 주고 있던 것이었다.
그 후로 휘종은 또 “어지러운 산이 옛 절을 감추었다.”
‘亂山藏古寺-난산장고사’라는 화제를 내놓았다.
이번에도 황제를 만족시킨 그림이 한 점 있었는데, 그 그림의 화면엔 어디에도 절은 없고 오직 깊은 산속 작은 오솔길에 스님 한 사람이 물동이를 이고서 올라가는 모습뿐이었다.
황제는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스님이 물을 길으러 나온 것을 보니, 근처에 절이 있는 것을 알 수 있겠구나! 산이 너무 깊어서 절이 보이지 않는 것이니 비록 절을 그리지는 않았지만 물을 길으러 나온 스님만 보고도 가까운 곳에 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이와 같은 기법을 한시에서는 ‘홍운탁월(烘雲托月)’ 또는 ‘입상진의(立象盡意)’라는 말로서 표현한다. 달을 직접 그리지 않고 주변의 구름을 그림으로써 달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이른바 ‘구름이 그린 달빛’이라는 의미의 기법이다.
뛰어난 예술가는 사물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화공’과 ‘예술가’를 구별하는 기준이 별도로 존재하겠는가마는 굳이 변별을 하고자 한다면 철학적 사유의 세계에 그 기준이 있지 않을까 싶다.
화공이 사물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현상 세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한다면 예술가는 사물의 본질적 실체를 관조하여 ‘사유 세계’를 형상화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화공이 외물의 형상에 대한 미학적 감식안을 가진 사람이라면 예술가는 내면에 숨겨져 있는 본질을 유추해 내는 철학적 심미안을 가진 사람이라야 그 칭호에 걸맞을 것이다.
정말로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눈에 보이는 것의 가치는 저마다 판단과 분별이 가능하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는 결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 외에 형상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본질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졌을 때, 비로소 세상의 이치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꽃은 웃어도 소리가 들리지 않고, 새는 울어도 눈물을 보기 어렵네”
花笑聲未聽-화소성미청
鳥啼淚難看-조제루난간
고려 시대의 천재 시인이었던 이규보가 여섯 살 때 썼다는 한시(漢詩)이다.
흔히 시인들은 ‘시를 쓴다.’ 하지 않고, ‘시가 내게로 왔다’라고 한다.
시가 꽃향기를 타고 시인의 가슴에 날아드는 것처럼 오늘 내게도 詩心이 날아든다.
바야흐로 ‘화란춘성 만화방창,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라는 춘삼월 호시절이다.
소싯적 시인이 되고 싶은 열망이 간절했으나 시를 다 읽기도 전에 술을 먼저 배워버린 까닭에 시가 고프면 으레 술이 먼저 당긴다.
박목월 시인은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라고 생명의 계절 4월을 노래하였지만, 나는 양지바른 동산에 온몸을 내맡기고 꽃 꺾어 산(算) 놓으며, 시(詩)와 함께 무진무진 취하고 싶다.
아~, 나의 청춘이여~, 나의 봄날이여~^^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