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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주반생기 - 文酒半生記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칼럼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남의 집을 방문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굳어져 버렸다. 비단 코로나 때문만이 아니라 아파트 생활이 일반화되면서부터 생겨난 관습이 아닌가 싶다. 손님이 오지도 가지도 않는 주거생활이 오늘 우리의 현주소이다.

아랍속담에 ‘손님이 오지 않는 집은 천사도 오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구약의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이 손님을 접대하기를 즐겨 하여 부지중에 천사를 영접하는 복을 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조상들의 일상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일이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이었다. 행세깨나 하는 집은 어디에나 사랑채가 있었으며 그곳의 용도는 언제든 나그네가 무상으로 묵어가는 게스트하우스와 같은 성격의 공간이었다. 주인은 이들을 접대하는 것을 아주 당연한 일상지사의 한 부분으로 여겼다.

공융(孔融)이라는 사람은 공자의 20세손으로 자(字)는 문거(文擧)인데, 어려서부터 성품이 자유분방하였고 재주가 남달랐다 한다. 십상시(十常侍)의 전횡을 비판한 청류파 선비로 유명하며,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주변에는 늘 손님이 가득 차고 술잔에는 술이 비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 손님 접대와 풍류를 즐기던 공융이 관직을 그만둔 후 평생소원이라며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자리에는 늘 손님이 가득하고, 술통에는 술이 비지 않으니, 내가 무엇을 근심하랴.”

座上客常滿, 樽中酒不空, 吾無憂矣.

‘청구영언(靑丘永言)’에는 공문거(孔文擧)를 패러디한 신흠(申欽)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준중(罇中)에 술이 잇고 좌상(座上)에 손이 가득 대아(大兒) 공문거(孔文擧)를 고쳐 어더 볼꺼이고 어즈버 세간여자(世間餘子)를 닐러 므슴 하리오”

오랜만에 친구가 나의 집을 방문했다. 이 친구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이다. 친구는 아프리카의 ‘캐냐 대사’와 중동의 ‘레바논 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6년의 임기를 마치고 올봄에 영구 귀국하였다.

이 친구는 전형적인 순종형 모범생이다. 나와는 기질이나 성향이 전혀 달라서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워낙에 뛰어난 그의 품성에 항상 내가 교화되고 만다.

그는 언제든 언어나 행실이 모범에서 어긋나는 법이 없다. 사는 집마저도 초등학교 때 지었던 서울의 집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사를 하지 않았다. 증·개축조차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70년대식 낡은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며 때때로 고장 나는 보일러나 손봐가며 그런대로 살아왔다. 최근 춘부장께서 작고하시자 올해 들어 평생에 처음으로 아파트로 이사하여 마침내 경기도민이 된 것이다.

그 흔한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주식투자 한 건이 없었다. 대사 임명 시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양대에 걸친 청와대 인사 검증에서 탈탈 털어 먼지 하나 안 나왔던 유일한 관료였다. 뿐만이 아니라 선후배 동료 모두에게 두루 신망이 두터운 21세기의 살아있는 청백리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나의 절친이자 외우(畏友)라는 것이다.

그런 그가 경기도민 전입신고차 끌려오듯 나의 처소를 방문케 되어 양주동 박사의 ‘문주반생기’와 같은 젊은 날의 치기 어린 기억을 더듬으며 낭만 가득한 추억여행을 하였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구만리 같은데 벌써 은퇴할 시점이 되어 추억을 논하며 옛일을 회상하노라니 그야말로 ‘인생이 아침이슬 같다. 人生如朝露.
어찌하겠는가? 우리는 너나없이 지구라는 별에 소풍을 나온 나그네들이요 이방인들인 것을~,

그저 한세상 기웃기웃 구경이나 하면서 세상의 경이와 신비를 만끽하다 때가 되어 다시 별나라로 돌아가면 그만인 것을~^^

술통엔 술이 가득하고 이웃엔 불러 낼 친구가 있으니, 이제 내가 무엇을 근심한단 말인가? 인생은 고단해도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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