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이 없어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有恥可恥. 無恥亦可恥.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있다.
有恥者, 必無恥, 無恥者, 必有恥.
그러므로 부끄러운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능히 부끄러움이 있게 되고,
부끄러운데 부끄러워하면 능히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故恥無恥, 則能有恥, 恥有恥, 則能無恥.
부끄러운 일에 부끄러워함이 있는 사람은 그 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운 일에 부끄러워함이 없는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음을 가지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恥有恥者, 以恥爲恥也, 恥無恥者, 以無恥爲恥也.
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워하는 까닭에 부끄러움이 없게 되려고 생각하게 되고,
부끄러움이 없음을 가지고 부끄러워하는 까닭에 부끄러움이 있으려 생각하게 된다.
以恥爲恥, 故思無恥, 以無恥爲恥, 故思有恥.
부끄러운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능히 부끄러움이 있게 되고,
부끄러운데 부끄러워하면 능히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이것을 일러 부끄러움을 닦는다고 한다.
요컨대 이를 닦아 힘써 행할 뿐이다.
恥無恥而能有恥, 恥有恥而能無恥. 則是謂脩恥. 要脩之力行而已.
-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의 「수치증학자(脩恥贈學者)」 가운데서
선생께서는 부끄러움이 참으로 많은 사람이었던 듯하다. 부끄러움이 있는 것이 부끄럽고,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에 또 부끄럽고, 부끄러운 짓을 해놓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부끄럽고, 부끄러울 것 없다고 감히 말한 것이 또 부끄럽고, 부끄러워서 부끄럽지 않으려 다짐하고, 부끄러울 것 없다고 생각한 그 생각이 부끄러워서 또 부끄럽지 않으려고 다짐하였던 듯하다.
‘부끄러움’이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무화과 잎으로 자신의 벗은 몸을 가린 일이다. 이전에 몰랐던 ‘부끄러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부끄러움이란 무엇인가?
아담과 이브가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위치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는 의미이다. 부끄러움이란 ‘자신을 자각하는 능력’이 비로소 생겼다는 의미이다. 이는 또한 선함과 악함의 구별에 그 근본을 두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끄러움을 잊어갈 때 그 잊어버린 부끄러움이 또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다. 그 부끄러움은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청년 ‘윤동주’에게 한없이 부끄러운 날이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