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쯤, 4인 가족이 단란하게 살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매일 밤 10시에 이른바 ‘가정예배’라는 걸 드렸다.
당시 나와 딸내미는 매우 불편한 관계였는데, 굳이 비유하자면 견원지간의 앙숙 사이였다. 예배 시간이 때로 은혜가 됐던 적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개는 예배를 마치고 나면 반드시 딸의 반격이 있었다.
“아빠는 설교를 빙자해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설교 시간이 너무 길다.”~, “찬송을 너무 같은 거만 반복한다”라는 등등~,
어느 날인가 화해를 종용해보고자 어렵사리 힘들게 한마디 하였다.
“우리가 평생토록 변함없이 영원히 한집에서 같이 살 것 같지만, 이렇게 함께 예배드리는 일도 그다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그 말이 있은 뒤로 우리는 채 1년이 안 되어 각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딸내미는 계획에 없던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었으며, 아들은 예상보다 빠르게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후로 우리는 한 번도 같은 집에서 함께 살지 못하였으며, ‘가정예배’는 그저 서로의 마음속에 영원한 추억으로 남고 말았다.
온순하고 순종적인 아들에 비해 딸내미는 자기주장이 분명하고 논리적인데다 비판의식이 매우 강하였다. 그런 성향 때문에 나와 자주 충돌이 일어나 예배 시간이면 항상 긴장이 고조 되었다. 어느 날인가 예배를 마친 후 도저히 대화가 안 되겠다 싶어 한밤중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짤막하게 글을 써서 봉투에 담아 딸내미 방 앞에 두었다.
글의 내용은 이렇다.
“사직서~, 아빠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오늘 자로 귀하의 아빠를 사임하고자 합니다. 부디 교회의 집사님 정도로만 대우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날 아침, 안방 앞에 놓여진 딸내미의 봉투를 발견하였다. 다소 흥분이 되기도 하였으나 행여 반성 좀 하였으려니 하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설레며 읽어 보았다. 그러나 글을 보고서 나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사직서를 반려합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 물가인상분을 고려하여 딸의 품위유지비를 두 배로 인상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런 딸내미를 이기려고 했던 내가 어리석었음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딸내미는 자기의 주장이나 신념이 매우 강한 유아독존의 스타일이다. 자신이 뜻을 세우고 나면 어떤 경우에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 내 만족이 우선 된 뒤라야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생겨난다.
아들은 자기 누나와는 성향이 전혀 다른 품종이다. 딸이 ‘목표지향적’이라면 아들은 ‘관계지향적’ 인간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먼저 주장하는 법이 없다. 이미 결론이 난 사항에 대해서도 상대가 입장을 번복하면 언제든 순순히 받아들인다.
최근에 아들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아빠 제발 누나한테 덤비지 좀 마~, 아빠하고 나는 절대로 누나를 못 이겨~, 그냥 복종해~^^”
정녕 이것이 나의 살길이란 말인가?
마침내 나의 시대는 이렇게 저물고 말았단 말인가?
얼떨결에 자식 둘을 모두 미국에 수출 보내고 나니, 반드시 알아야만 할 ‘가문의 역사’와 ‘庭訓’을 전해주지 못했던 나의 안일함이 너무도 크게 후회가 된다. 이미 낯선 이방인이 되어버린 자식들에게 더 이상의 간섭이나 충고가 무의미해진 지금 그저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퇴물이 되고 만 것이다.
흑흑~^^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