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의 아들네 집에 머물 때 종종 한국방송의 재방영분을 혼자 볼 때가 있었다.
어느 날인가 우연히 ‘가요무대’의 재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어떤 외국인 트롯 가수가 아리랑 목동을 불렀다. 너무나 반갑고 고마웠다. 가사를 옳게 부른 이유 때문이었다.
응원가로 더 잘 알려진 아리랑 목동의 우리가 알고 있는 가사 내용은 이러하다.
“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야, 아주까리 동백꽃이 제아무리 고와도, 동네방네 생각나는 내 사랑만 하오리까”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응원 연습할 때 처음 이 노래를 배운 뒤로 마음속에 늘 의문이 들었다. ‘동네방네 생각나는 내 사랑’은 도대체 어떤 사랑일까?
‘동네방네 소문난’ 것도 아닌 ‘동네방네 생각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이것은 명백한 비문이다.
외국인 여가수가 부른 가사 내용은 이랬다.
“꽃 가지 꺾어 들고 소먹이는 아가씨야 아주까리 동백꽃이 제아무리 고와도 몽매간에 생각 사자 내 사랑만 하오리까”
그렇다면 ‘몽매간에 생각 사자’는 당최 무슨 말이며 ‘아주까리 동백꽃’은 또 어떤 꽃이란 말인가? ㅎㅎ~^^
원래 이 곡은 1955년에 발표된 곡으로 원작자는 작곡가가 박춘석, 작사가는 강사랑이고 최초의 가수는 박단마였다.
처음에는 크게 히트되지 못하여 사장되다시피 하였으나 훗날 이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과정에서 가사집이 없다 보니 오래된 LP판에서 들리는 발음대로 가사를 옮겨왔다. 그래서 부르는 가수마다 내용이 약간씩 달랐다.
이 오래된 구전가요 성격의 곡을 70년대에 들어 이미자, 나훈아, 하춘화, 백설희, 은방울 자매 등이 리메이크하면서 지금의 가사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우습게도 ‘몽매간에 생각 사자’를 ‘동네방네 생각나는’으로 알아듣고 너도나도 의미도 모른 채 그렇게 따라 부른 것이다.
그런 사연을 알고 있던 내가 뜻밖에 외국인 여가수에 의해서 원래의 가사를 듣고 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몽매간에 생각 사자’는 도대체 무슨 뜻인가?
‘몽매간에 생각 사자’는 한자어와 한글의 합성어이다. 즉 ‘몽매’의 ‘夢寐’는 곧 잠자면서 꾸는 꿈이라는 의미이고 ‘생각 사자’는 ‘생각 思자’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잠자며 꿈꾸는 사이에도 생각하고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또한 ‘아주까리 동백꽃’이라 하였는데, 세상에 그런 꽃은 없다. 이 말은 “‘아주까리기름’이나 ‘동백꽃 기름’으로 치장한 모습이 제아무리 고운들”이라는 속뜻을 갖고 있다. 4.4조의 운율을 맞추기 위하여 의미가 다소 생략된 것이다.
우리의 언어는 한자어가 압도적으로 많다. 한자어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소리글에만 몰두하여 의미 글을 방기한 결과가 이렇게 반백 년이 지나도록 우스운 꼴을 하고 전 국민 사이에 회자가 된 것이다.
ㅎㅎ~^^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