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전인 몇 년전 미국 달라스에서 라스베가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의 일이다. 좌측 창가에 자리 잡고 있던 내 앞으로 대략 3백K쯤 되어 보이는(부부로 추정되는) 흑인 거구 두 사람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끝내 내 앞자리에 앉고 말았다.
순간 암전이 된 듯 눈앞이 캄캄해졌다. 앞 의자 사이의 공간이 막히고 위로는 검정 머리통 두 개가 우뚝 솟아올라 시야를 가렸다.
나는 갑자기 숨이 막히고 호흡이 가빠지며 온갖 두려운 생각에 스스로 겁에 질리고 말았다. 비행기가 자꾸만 좌측으로 기울고 있다는 환상과 함께 만약 이 상태로 추락한다면 나는 영락없이 이 두 사람의 거구들에게 깔려 압사할 것이라는 공포가 엄습해왔다.
미국 사회에서 2M가 넘는 사람이나 2~3백K의 거구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좁은 환경에서 밀접하게 접촉하고 보니 저절로 느껴지는 불안감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의 거구라면 일등석을 타든가 하지 이렇게 좁아터진 곳에서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나 하며 속으로 불평하였다.
나는 탑승 시에 위탁 수하물이 4K를 초과하여 백 불의 추가 요금을 별도로 지불하였다. 그렇다면 60K인 나와 비교해 저들은 4~5배의 무게가 더 나가는데, 나를 기준으로 저들에게 비용을 추가하든지 아니면 저들을 기준으로 내게 차액을 환불 해주든지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이거야말로 차별이 아닌가 하는 원망의 마음이 들었다.
무의식중에 저들과의 관계를 나는 ‘선량한 피해자’로 저들은 ‘잠정적 가해자’로 설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질식할 것 같은 침묵의 시간이 두어 시간이나 흐른 뒤 화장실에 가려고 통로를 지나다 그들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고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무릎은 이미 앞 좌석에 달라붙어 있었고 옆좌석과는 숨 쉴 틈도 없이 어깨가 밀착되어 고개를 돌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옴짝달싹 못하여 화장실 가는 것조차 참을 수밖에 없는 저들의 처지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수갑만 안 채웠지 그야말로 고문이었다. 인간에 대한 예우는 전혀 없었다.
순간 나는 점차로 생각이 바뀌었다.
만약에 어떤 학교에서 점심 급식으로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햄버거를 한 개씩 지급했다고 가정한다면 과연 이일은 공평한 일이라 할 수 있을까?
나 같은 60K짜리 경량급은 한 개로도 양이 많아 남길 수도 있겠지만 저와 같은 거구들에게 햄버거 한 개는 점심이 아니라 간식거리도 되지 않을 것이다. 저들에게는 4~5개 정도는 되어야 한 끼의 급식이 될 터인데, 햄버거 한 개로 모두에게 똑같이 한 끼의 급식이 지급되었다고 계산한다면 그것은 공평이 아니라 역차별이 되고 말 것이다.
중요한 것은 ‘1인분’의 기준이 사람마다 달라야 한다는 점이다. '똑같이 한 개'가 공평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한 끼'가 되게 하는 것이 공평한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두 거구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환불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저들이었다. 저들도 똑같이 1인용 비용을 지불하였음으로 1인분의 권리를 누릴 권한이 있었던 것인데, 항공사의 인간에 대한 개별적 배려가 없는 획일적이고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그들이 오히려 고통과 역차별을 당한 것이다.
저들은 내게 어떤 이유로든 피해를 주지 않았으며 그럴 의도조차 없었다. 저들을 이웃으로 대하지 않고 까닭 없이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였던 나의 성급한 피해의식이 매우 부끄러워졌다.
내릴 적에야 비로소 송구한 마음이 들어 내가 먼저 일어나 만면에 미소를 띠고 그들의 기내 짐을 대신 꺼내주었다.
그들 또한 만면에 미소를 띠고 “Thank you so much” 한다.
나도 얼떨결에 대답하였다. “That’s all right, I am sorry”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