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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五餠二魚) – ‘기적’인가 ‘감동’인가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칼럼



소식이 끊겼던 후배를 여차저차해서 30여 년 만에 우연히 만났다.

한때 건달 생활을 하기도 했다던 그는 죽을 고비를 만난 끝에 개과천선하고 종교에 귀의하였다 한다. 말끝마다 ‘우리 주님께서’ 자신을 살려주시고, ‘우리 주님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셨다 한다.

중국과 교역을 하는 모양인데 자산이 수백억대에 이른단다. 돈 버는 일에 젬병이고 별 관심조차 없는 내가 그의 말에 리액션이 뜨뜻미지근 하자 그는 다시 힘을 주어 ‘우리 주님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시는데, 마치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제야 내가 선뜻 관심을 보이며 그에게 오병이어의 뜻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을 무엇으로 보는 거냐며 가벼운 역정을 내고는 자신 있게 말했다.

광야에서 예수님이 오천 명을 상대로 설교를 하시는데 식사 때가 되어 모두가 먹을 것이 없었단다. 이때 어떤 아이 하나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오자 거기에 대고 기도를 하니 광주리에 차고 넘쳐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바구니가 남았다 한다.

내가 매우 씁쓸한 표정으로 “그럼 기도했더니 하늘에서 떡이 떨어졌다는 말이냐” 하고 되묻자 이것은 예수님만이 가능한 기적이라는 것이다. 빈 바구니였지만 기도하고 나니 ‘기적’이 일어나 떡이 가득 찼다는 것이다.

내가 반론을 폈다.

“우리는 농경민족이라 “탕(湯)” 문화가 발전했다. 같은 곳에서 일하고 같은 곳에서 함께 먹기 때문에 큰솥에 탕을 끓여서 함께 나누어 먹는 풍습이 생겨났다. 이에 반해 유목민은 넓은 초지에서 이동하며 생활하기 때문에 개개인이 혼자서 가축을 지켜야 하고 때로는 며칠씩 들에서 지내야 한다. 이 때문에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을 마른 음식 문화가 발달하게 됐다. 이것을 ‘건량(乾糧)’이라 하는데, 이스라엘과 같은 유목민들은 집을 나설 때면 누구나 며칠 분의 건량을 소지하고 다닌다.

어린아이가 내어놓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역시 마른 음식인 ‘건량’이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축사한 뒤에 떡이 하늘에서 쏟아진 것이 아니고, 그의 말씀에 감동이 된 군중이 저마다 자기가 먹으려고 소지했던 건량들을 내어놓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제자들이 거두었다가 공평히 나눠준 것이다. 그렇게 하고도 열두바구니나 남았다는 것이 성경의 요지일 것이다.”라고 설명한 뒤에 덧붙여 말하였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 명분의 양식으로 만들어 내는 마술 같은 ‘기적’이란 것은 애초에 없다. 단지 민중의 ‘감동’이 있을 뿐이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교훈은 ‘기적의 드라마’가 아닌 ‘감동의 스토리’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를 경원시하며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였다. “이것은 반드시 예수님의 기적이며, 믿음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또한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받는 것처럼, 절대 긍정, 절대 믿음이 중요하며 오직 기도만이 ‘만능열쇠’라는 것이다.

나 역시 안타까운 마음으로 내 생각을 전하였다.

“이 말씀의 교훈은 예수의 기도빨에 대한 영력이나 신통력을 강조한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기도하면 자신의 욕망대로 복을 받는다는 ‘기적’의 의미가 아니라 한 사람의 자기희생과 헌신이 공동체 전체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감동’을 전하는 내용으로 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면 언제든 ‘자기희생’과 ‘헌신’이 먼저 수반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거듭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형(兄)과 같이 이성으로 성경을 해석하려는 자는 불신자이며, 이단이라는 것이다. 자신은 오직 “자기 교회의 목사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라며 언성을 높였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의 현실이다. 교회 가서 예수 믿으면 복 받고 부자로 살다가 죽어서 천국 간다는 것이 한국식 기독교라는 왜곡된 무속신앙의 현주소이다. 권력과 돈에 눈이 먼 무당 목사들의 ‘절대적 세뇌’와 자신들의 현세적 욕망 충족을 위한 기복과 발원에 눈이 먼 신자들의 ‘맹목적 믿음’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제발 선거철만이라도 잠잠했으면 좋으련만~^^

여기에 ‘압돌라 바하’의 명언을 첨언 하고자 한다.

Religion without science leads to superstition,
Science without religion leads to materialism.

과학 없는 종교는 미신으로 흐르고, 종교 없는 과학은 물신으로 흐른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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