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네이버 등 포탈 인물 검색란 경력이 ‘제20대 대통령 영부인’이라고 표기돼 있어 조롱을 받고 있다. 영부인은 경력이 아니기에 그렇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윤 후보는 부인의 비리 의혹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자 자신이 집권하면 ‘영부인’제를 폐지하겠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봤다. 그 무지의 소치에 대해 헛웃음이 나왔다.
‘영부인(令夫人)’을 행여 ‘영부인(領夫人)’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대통령의 부인을 영부인으로 불렀던 관례는 박정희 시절의 전유물처럼 매우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대통령을 ‘각하’라는 별칭과 함께 온갖 존칭을 자신의 일가족에게만 적용하였던 것은 언론의 아첨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부인(令夫人)’은 대통령의 부인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고 남의 부인의 높임말이다.
‘부인(夫人)’이라는 말 자체가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지만 신분이나 지체가 높은 상대에 대한 공경의 의미를 더하여 ‘영부인’이라 한 것이다.
아울러 ‘영존(令尊)’은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이고 ‘영당(令堂)’이나 ‘영자(令慈)’는 남의 어머니의 높임말이다.
박정희 시대에 그의 딸과 아들을 ‘영애 근혜’양, ‘영식 지만’군 하는 식으로 언론에서 불렀다. 이때의 ‘영애(令愛)’는 남의 딸을 높여 부르는 말로서 ‘영원(令媛)’이라고도 한다. 또 ‘영식(令息)’은 남의 아들을 높여 부르는 말로서 ‘영랑(令郞)’이라고도 한다. 반드시 대통령의 자녀에게만 해당이 되는 존칭이 아니었다. 조선 시대의 간찰을 보면 양반 사대부들의 일상의 언어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자신의 자식을 겸양하여 낮춰 부르는 말로는 ‘돈아(豚兒)’ ‘미아(迷兒)’ ‘미돈(迷豚)’ 혹은 ‘가아(家兒)’라고 한다. 모두 아직 어리석고 철이 없는 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각하(閣下)’라는 존칭의 의미도 대통령에게 한정되어 쓰는 말이 아니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 대한 일반적 경칭이다. 전통적으로 동양식 사고에 기인한 경칭은 상대를 높이기보다는 자신을 낮춰서 상대를 높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황제를 폐하(陛下), 왕이나 제후국 군주를 전하(殿下), 왕세자를 저하(邸下), 정일품을 합하(閤下) 등으로 칭하였으며 신분이나 지체가 높은 사람을 통칭 각하(閣下)라 하였다.
나는 종종 친구의 아내를 자네 “어부인께서는 안녕하신가?”라고 인사할 때가 있다.
‘영부인’이 신분이 귀한 사람에 대한 존칭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라면 그보다 더욱 공경하여 높이는 별칭은 ‘어부인(御夫人)’이다.
어부인의 ‘어(御)’는 임금에게만 쓸 수 있는 최상의 극존칭이다. ‘어명(御命)’, ‘어가(御駕)’, ‘어필(御筆)’, ‘어용(御用)’에서 보듯 모두 임금이나 제후국의 군주에게만 쓸 수 있는 단어이다.
상대를 기분 좋게 하고자 예우하는 말인데 봉건제의 왕조시대도 아닌 마당에 사인끼리 호칭에 있어 ‘영부인’이면 어떻고 ‘어부인’이면 어떠한가? 민주 시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면 국민 모두가 택한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영부인(領夫人)’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가? 결론적으로 그런 말은 없다. 굳이 문법적으로 해석하자면 ‘領’자가 거느릴 ‘령’자이니, 부인을 거느리고 있다는 의미가 되고 만다.
만약 당시 윤대통령이 ‘영부인(令夫人)’이라는 존칭 어법 제도 자체를 자신이 없애겠다는 의도에서 한 말이라면 매우 어이없고 황당한 발언이지만, ‘영부인(領夫人)’을 하지 않겠다. 즉 ‘부인을 거느리지 않겠다’라는 발상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처의 도덕 수준이 그 정도 상황이라면 누군들 부인을 대동하고 싶겠는가?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