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동창이 있는 시골 출신의 친구들을 너무나 부러워하였다. 돌아갈 고향과 추억을 간직한 실존하는 동창들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오랜 부러움 끝에 내가 내린 차선의 방법은 '어촌'이든 '산촌'이든 전원에 사는 사람을 친구 삼아서 언제든 그를 찾아가 향수를 만끽하는 것이었다.
그 오랜 꿈이 마침내 현실로 실현되었다. ‘무릉도원’을 소유하고 있는 산촌에 사는 페친을 만난 것이다. 아무래도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 같다.
내가 동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그림 같은 집에서 빗소리에 취해 잠을 자게 될 줄 일찍이 상상이나 해보았던가? ‘무릉도원’과 함께 수천 평이 넘는 과수원을 소유한 주인장은 정작 전원생활이 자신의 로망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내몰리고 내몰려 땅을 떠안게 되었고 죽을 고생 끝에 조금씩 조금씩 배워가며 가꾸어 온 것이 오늘날 이런 훌륭한 결과물이 되었다고 한다.
시멘트 지옥을 벗어나 문명의 소음이 전혀 없는 곳에서 듣는 맑은 빗방울 소리는 태고의 적막을 깨트리는 생명의 소리였다. 새벽녘 먼발치서 아스라이 들리던 닭 울음소리는 마치 봉황이 아침 햇살에 우는 듯하여 인생 2막의 새 역사를 알리는 천상의 소리 같았다. 밤새 이백과 두보를 벗 삼아 시를 읊고 도연명과 소동파와 더불어 잔을 나누었다.
구양수가 「취옹정기(醉翁亭記)」에서 자신의 호의 의미에 대하여 말하기를, “취옹(醉翁)이라 한 것은 술에 있지 아니하고 산수의 즐거움에 있으니, 산수의 즐거움을 마음에 얻어 술에 붙인 것이다” [醉翁之意不在酒, 而在乎山水之間也.] 라고 하였는데, 이곳을 찾은 나의 뜻도 술에 있지 아니하고 산수와 더불어 느끼는 향수(鄕愁)의 즐거움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의 취기는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자연에 취하고 향수에 취한 것이며, 벗과 함께 지음(知音)이 된 의리에 취한 것이다.
이곳이 바로 노자가 말한 ‘小國寡民 (소국과민)’의 나라요, 토마스모어의 유토피아요, 장자가 꿈꾸던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 아니겠는가?
‘무릉도원’과 함께 수천 평이 넘는 과수원을 소유한 주인장은 정작 전원생활이 자신의 로망이 아니었답니다. 어쩔 수 없이 내몰리고 내몰려 땅을 떠안게 되었고 죽을 고생 끝에 조금씩 조금씩 배워가며 가꾸어 온 것이 오늘날 이런 훌륭한 결과물이 되었다 합니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