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어 놓지 않은 배’
일찍이 괴테는 이런 말을 남겼다.
“바다로 출항하는 것에는 위험이 뒤따른다. 그러나 출항하지 않으면 기회조차 없다.”
파도가 두려워 바다를 피한다면 결코 물고기를 잡을 수 없다. 그물은 배에 두어서는 안 된다. 그물을 바다에 던졌을 때만이 비로소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법이다.
스펄전을 비롯한 후대의 학자들이 다시 이 말을 매우 유려하게 풀어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기회가 있는 곳으로 가야만 한다. 세찬 파도와 싸울지라도 반드시 출항하여 기회의 땅을 찾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 자신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 믿고 기다리고 있다면 그런 꿈은 차라리 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꿈은 간절히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꿈을 땀으로 적실 때만이 비로소 이루어지는 법이다.
미 대통령선거에 세 번이나 출마하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이렇게 말했다.
“운명은 기회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다.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면 되는 것이다.”
비록 그는 세 번 모두 낙선하였지만 나는 그에게서 도전하는 인생이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명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피동적으로 주어지는 ‘기회의 유무’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동적 개입에 의한 ‘선택적 취사’에 달려있다고 믿는 그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태도가 내 가슴을 뛰게 한다.
배가 항해를 할 때 제 기능을 다하는 것처럼 사람도 자신의 인생의 가치를 스스로 구현해 낼 때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 가치를 구현해내기 위한 도전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아름다운 일이다.
이 멋진 아포리즘을 중역(中譯)이나 영역(英譯)으로 표현한다면, 대략 이런 형태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船在港口的时候最安全. 但这并不是船存在的理由.”
“Ships are safest when in port. But that’s not the reason for the ship’s existence.”
이것을 다시 한대의 고문으로 한역(漢譯)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舟在港則安, 然非舟所存.”
- 주재항즉안, 연비주소존. -
이 가슴 설레는 메시지를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 두었는데 수년 전 고찰을 순례하는 여정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문장을 번역하다 보니 장서인(藏書印)이나 두인(頭印)으로 쓸만한 아이디어를 하나 얻었다.
항구에 매어 놓지 않고 언제나 자유롭게 항해를 한다는 생각에서 “매어 놓지 않은 배”라는 의미의 ‘不繫之舟-불계지주’라는 사자성어를 고안해 냈는데, 글쎄 그게 이미 전거(典據)가 있었던 것이었다.
하늘 아래 새것은 없다더니 역시 나와 비슷한 류의 고민으로 이런 식의 표현을 했던 선현이 있었다니 참으로 놀랍고 나의 천학비재한 무지가 부끄럽다.
미래는 신에게 맡겨야 한다. 미래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미래는 하늘에 맡기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만 한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만든 것처럼 오늘의 내가 또 내일의 나를 만들어 갈 것이다.
기실 나는 어떤 ‘기회’나 ‘목적’을 위해 인생의 닻을 올리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또한 ‘정처 없는 방랑’을 한다거나 ‘속세를 초월한 무념무상의 경지’를 향해 매인 밧줄을 벗고자 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인생의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고 싶었을 뿐이다.
나를 얽매었던 고정관념이라는 편견의 밧줄을 벗어버리고 미지의 세상을 향해 사고의 변혁과 함께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사유의 세계를 경험하고 싶었을 뿐이다.
행복은 반드시 목적지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목적지를 가는 여정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그 여정의 한 길목에서 자유로운 항해를 하고 있을 뿐이다. “舟在港則安, 然非舟所存.”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