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움의 길은 날로 쌓아가는 것이며, 道의 길은 날로 덜어내는 것이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무위’의 경지에 이른다. 무위는 하지 못함이 없는 함이다.
천하를 다스림은 ‘無爲’로써 하는 것이지 ‘有爲’로써는 부족하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노자 ‘道德經’ 중에서-
공부는 날마다 더해가야 하고 마음은 날마다 비워내야 한다. 배움은 채우는 것이요, 도는 비우는 것이다. 생명은 언제나 ‘채움’과 ‘비움’으로써 성장하고 소통한다. 인생은 진실로 이 순환의 가치와 의미를 중히 여겨야 한다.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지식을 날로 더하는 것이요, 도를 따른다는 것은 내 속의 욕망을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다. 덜고 또 덜어내서 하는 일이 없게 되는 경지에 이르면, 마침내 하는 일이 없게 되어도 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는 말씀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론적 인생관을 주장하며 인생의 궁극적 목적을 ‘행복’에 두었다. 그 후 행복을 정의하는 여러 갈래의 학설이 생겨났다. 키니코스 학파는 ‘무소유의 행복’을 주장하였으며, 스토아 학파는 ‘행복이란 외부의 소유가 아니라 내면적 자유에 의해 생겨난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에피크로스 학파는 행복에 이르는 길을 “성취를 증가시키기보다는 욕망을 줄이는 데 있다”라고 정의하였다.
어떤 것이 되었던 인생의 참다운 행복이란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것의 가치를 깨닫는 데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에서의 진정한 행복이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날마다 학문을 하여 유익함을 더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날마다 자신의 욕망을 덜어낸다는 것 역시 욕망 덩어리인 인간에게는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계명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날마다 우리 안의 욕망을 덜어내야만 한다. 매일 먹기만 하고 배설하지 않는다면 그 인생이 어찌 되겠는가? 육체가 음식물을 흡수하고 남은 찌꺼기를 날마다 배설하듯 우리의 영혼도 분수에 넘는 욕망의 찌꺼기를 날마다 배설해낼 때 몸과 영혼이 모두 건강해질 수 있는 법이다.
노자의 위대한 깨달음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