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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에 살리라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칼럼



최근 고양 아람누리에서 ‘고양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주관하는 제3회 그리운 한국 가곡 시리즈 ‘가곡에 살리라’ 공연이 있었다.

예술의 전당 사장을 지낸 고학찬 님과 탈렌트 김희애의 언니 김희영 아나운서의 재치 있는 진행과 입담으로 한 여름밤 무더위를 날려주었던 품격있는 공연이었다. 다행히 한국 가곡이라 대부분 아는 곡들이어서 가사에 깊이 매료될 수 있었다.

특별히 소프라노 오하은 님이 부른 ‘동심초’는 너무나 반가운 곡이었고, 바리톤 ‘우헌 ’님의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매혹의 소리는 넋을 빼앗기기에 충분하였다.
동심초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당나라 시인인 설도(薛濤)의 시를 김소월의 스승인 안서 김억이 번역한 곡이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설도의 한시를 원문과 함께 노졸한 나의 솜씨로 여기에 옮겨 놓는다.
꽃이 피어도 함께 즐길 이가 없고/
꽃이 져도 함께 슬퍼할 이가 없네/
묻노니, 그리운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이 때에/
-花開不同賞, 花落不同悲. 欲問相思處, 花開花落時-
​풀을 따서 한마음으로 맺어/
내 마음 아실 그대에게 보내려 하네/
봄날의 그리움 진정으로 잘라내었건만/
봄 새가 다시 와서 구슬피 우네/
-攬結草同心, 將以遺知音. 春愁正斷絶, 春鳥復哀吟-
꽃은 바람에 시들어가고/
만날 기약은 아득히 멀기만 한데/
서로의 마음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風花日將老, 佳期猶渺渺. 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
어찌 견디랴 꽃이 만발한 나뭇가지여/
괴로워라 사모하는 마음이여/
옥같은 눈물 아침마다 거울에 떨어지는데/
봄바람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那堪花滿枝, 翻作兩相思. 玉箸垂朝鏡, 春風知不知-

오케스트라 단원과 출연진이 너무나 빛나고 멋있어 보였다. 나도 저렇게 살 수는 없었을까 하고 부러운 마음에 그들의 프로필을 보다가 기함을 하고 말았다.

이태리, 독일, 오스트리아, 체고 등지에서 예술가로 성장하기까지 한 청춘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숱한 경쟁을 뚫고 오늘의 삶을 이루어 낸 것이다.
재능만으로 거져 얻어지는 삶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나의 삶에 자족해야 겠다는 분수를 빛의 속도로 깨닫고 말았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무엇으로~, 미국에 있는 우리 딸은 ‘달라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었던 것일까?

참으로 놀랄 일이다.

오늘에서야 견원지간인 딸내미가 처음으로 위대해 보였다.

아빠를 개무시하고 전혀 말 안듣는 딸내미지만, 그래도 저 잘난 맛에 사는 게 신통방통하다. 지 팔 지가 흔들고 잘 살겠지 뭐~^^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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