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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의식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칼럼



志行上方 分福下比 - 지행상방 분복하비

“뜻과 행실은 나보다 나은 사람과 견주고 분수와 복은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라.”

이 글의 출전은 조선 시대 3대 청백리 중 한 사람이었던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선생의 좌우명으로 그의 문집에 실려 있는 말이다. 선생께서 일찍이 16자의 교훈을 지어 자손에게 주었는데, 그 내용이 이와 같다.

無怨於人 無惡於己 - 무원어인 무오어기

志行上方 分福下比 - 지행상방 분복하비

“남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나쁜 점이 없도록 하라. 삶의 지향은 항상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을 목표로 삼아 행하고 처지와 형편은 항상 나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여 행복하게 여기도록 하라.”

흔히들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말들을 한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어떤 형태로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기 마련이고, 남과 더불어 인생을 살다 보면 자연스레 처지와 형편을 비교하며 자신의 위치를 규정짓고자 하는 법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비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균형 있게 비교하는 철학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삶을 기발한 시각으로 先人(선인)과 비교하여 자득한 사람이 있다. 당나라 때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수하[首夏-초여름]’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하였다.

밥은 배불리 먹어 ‘백이(伯夷)’에게 미안하고,

술은 충분히 마셔 ‘도연명(陶淵明)’에게 부끄럽다.

수명은 ‘안회(顏回)’보다 배가 더 길고,

재산은 ‘검루(黔婁)’보다 백배나 더 많다.

이 가운데 하나만 가졌어도 즐거운데,

하물며 나는 이 네 가지를 모두 가졌다.

食飽慚伯夷, 酒足愧淵明.

壽倍顔氏子, 富百黔婁生.

有一卽爲樂, 況吾四者並.

행복과 불행의 조건을 존재의 유무와 소유의 크기로 결정짓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행복의 기준을 정할 수는 없겠지만, 외형적 현상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교정하여 상대에 따라 차등 적용한다면 삶의 만족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남과 비교하는 상대적 열등에서 벗어나 인식의 지평을 새롭게 열고자 했던 선인들의 탁월한 지혜와 넉넉한 삶의 관조가 매우 돋보이는 대목이다. 누구와 비교하고 무엇에 견주느냐에 따라 내 삶의 가치관과 만족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나의 가치관과 삶의 기준은 나보다 뛰어난 사람의 철학과 행실에 비견하고, 나의 현실적 지위와 분수는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긍정하고 자족하는 것이 가치 전도의 시대를 지혜롭게 사는 삶일 것이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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