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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수이립 - 叉手而立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칼럼
지혜로운 그대는 나를 버리고
어리석은 나는 그대를 버렸네.
그대가 어리석은 것도 아니고 내가 지혜로운 것도 아니니,
이제부터 서로의 소식이 끊어지겠구나
智者君拋我, 愚者我拋君.
非愚亦非智, 從此斷相聞.
- 寒山子

남을 어리석다고 평가하는 것은 상대를 버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스스로 자신을 어리석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 또한 상대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자신의 지적 수행을 기준으로 타자를 ‘지(智)’와 ‘우(愚)’로 나누는 것 또한 권위주의적 태도와 다르지 않다. 서로가 외면하고 버리는 곳에 진정한 교류와 깨달음이 일어날 수 없다. 한산의 통찰이 참으로 놀랍다.

당나라 정관(貞觀)의 치세에 ‘국청삼은(國淸三隱)’이라는 전설의 세 인물이 있었다. 절강성 천태산(天台山) 국청사(國淸寺)에 살았던 도인들로 벼슬을 버리고 은둔한 ‘한산(寒山)’과 그의 도반 ‘습득(拾得)’이 그리고 은사인 ‘풍간선사(豊干禪師)’ 3인을 말한다.

‘풍간’은 아미타불, ‘한산’은 문수보살, ‘습득’은 보현보살의 화현(化現)이라 여길 정도로 여러 기이한 행적을 보였는데, 오히려 당시 사람들은 그들의 기이한 언행을 이해하지 못하고 멸시하며 천대하였다.

‘한산(寒山)’은 국청사에서 좀 떨어진 한암(寒巖)이라는 굴속에 살아서 ‘한산자(寒山子)’라 했다. 해진 옷에 커다란 나막신을 신고 다녔으며, 배가 고프면 국청사에 들러 대중들이 먹다 남긴 밥이나 나물 따위를 습득에게 얻어먹었다.

‘습득(拾得)’은 풍간이 산속을 거닐다가 길가에서 보자기에 싸여 울고 있는 갓난아이를 주어와 길렀기에 습득이라 불렀다. 어느 날 주지 스님이 “너를 습득이라고 부르는 것은, 풍간 스님이 너를 주워와서 길렀기 때문이다. 너의 본래 성은 무엇이며 어디서 살았느냐?”라고 묻자 습득은 들고 있던 빗자루를 놓고 두 손을 맞잡고 한참을 우뚝 서 있었다. 이를 본 주지 스님은 넋을 잃고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를 선문(禪門)에서는 ‘차수이립(叉手而立)’이라 했으며 이후에 선문의 화두가 되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 중략 ···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 ‘선암사’, 정호승

유홍준 교수가 선암사 제1의 보물이라고 칭하였던 지방문화재 214호로 지정된 선암사의 ‘뒷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우소로 유명해진 이곳에서 고뇌에 찬 명상을 하였다. “몸속의 오물만 배출시키지 말고 마음속 온갖 번뇌와 망상도 배출시키시오”라는 말씀과 함께 마침내 ‘하심(下心)’을 결행하였다. 어찌 욕망이 작정한다고 비워지겠는가마는 반드시 결단의 용기는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선암사 등 굽은 소나무 앞에서 나는 주워온 사람 ‘습득(拾得)이’처럼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차수이립(叉手而立)’하며 숨을 죽이고 서 있을 뿐이었다.

지난 기억을 비워버리고 습득이가 되어 살기로 그렇게도 다짐했건만 '습득이'도 '한산자'도 되지 못하였던 자신의 한계 앞에서 마침내 내면의 심층에 깊게 고여있던 뜨거운 눈물이 마그마처럼 솟아올랐다.

떠나버린 것들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고자 하는 결기의 순간이었다.
이제 새롭게 다시 써 내려갈 역사에는 불멸의 노래가 쉬지 아니하리라.
고청량산해천사-古淸涼山海川寺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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