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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 松廣寺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칼럼
높은 산꼭대기 한간 초옥에

노승이 반간, 구름이 반간을 차지하고 산다.

간밤에 구름은 비바람 따라 떠나가니

필경 노승의 한담 자적과는 같지 않네

千峰頂上一間屋, 老僧半間雲半間.

昨夜雲隨風雨去, 到頭不似老僧閑.

- 志芝禪師

노승이 홀로 사는 산꼭대기 초옥에 찾아오는 사람은 없지만 때때로 흰 구름이 오고 간다. 지난밤 폭풍우에 구름은 바람 따라 떠나가고 노승은 여전히 한가로움 속에 홀로 자적(自適)한다. 쾌속의 풍우(風雨) 따라 속절없이 떠나버린 구름에 대비하여 노승의 한담 자적하는 느림의 미학이 풍경처럼 그려진다.

‘선(禪)’은 인간의 심성을 순화하고 정신세계를 소조(塑造)하는 공정이다. ‘시’와 ‘예술’의 존재 이유 또한 전적으로 선과 일치한다.

10년을 경영하여 초려(草廬) 한간 지어내니

반간(半間)은 청풍이요, 반간은 명월이라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초가 한간에 반간은 청풍, 반간은 명월을 들인다 했으니 세간살이는 하나도 없다. 청풍도, 명월도 내 집 안에 두고 강산도 내 것 인양 집 뒤에 둘러놓고 보겠다 한다. 청풍도, 명월도, 강산도 모두가 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다. 곧 이들을 ‘자아화’한 것이다. 자연의 질서를 인간의 내면에 규범화하며 서정적 자아의 이상세계를 詩 속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시인의 청풍명월 속 풍류와 선의(禪意)의 흥취가 나를 선경(仙境)으로 이끈다.

말 없는 청산이요, 태(態) 없는 유수로다.

값없는 청풍이요 임자 없는 명월이라.

이 중에 병 없는 이 몸이 분별없이 늙으리라

- 우계(牛溪) 성혼(成渾)

푸른 산은 아무런 말이 없고, 흐르는 물은 어떤 모양의 흔적조차 없다. 맑은 바람은 소비자가 지불해야 할 값이 없으며, 밝은 달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특정한 주인이 없는 만인의 것이라 한다. 화자는 현실적 유(有)의 세계에 살지만 모든 만인에게 차별 없이 베풀어지는 자연의 무한(無限)하며 무상(無償)한 가치를 역설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광대무변한 자연에 순응하며 시인의 바람과 같이 나의 몸도 자연 속에서 병 없이 늙어가고자 하는 소망을 담는다.

순천의 송광사는 양산의 통도사, 합천의 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이다.

삼보사찰이란 불(佛)·법(法)·승(僧)의 삼보를 의미하는데,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통도사를 불보사찰(佛寶寺刹),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해인사를 법보사찰(法寶寺刹), 큰 스님을 많이 배출한 송광사를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 한다.

유서 깊은 송광사에서 선현들의 풍류 3首를 음미하며 ‘청풍’과 ‘명월’과 ‘산수’에 취해 돌아간다.

#승보종찰송광사불일문-僧寶宗刹松廣寺佛日門

#승보종찰조계산송광사-僧寶宗刹曹溪山松廣寺

#무소유길

#무무문-無無門

#효봉대종사사리탑-曉峰大宗師舍利塔

#불광보조길상여의-佛光普照吉相如意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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