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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오훼 - 長頸烏喙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칼럼
긴 목에 까마귀 부리와 같이 뾰족한 입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이런 사람은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리지 못할 관상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말로써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 월왕(越王) ‘구천(勾踐)’을 이르는 말이다.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범려(范蠡)’였다. 범려는 20여년 동안 구천을 보필하며 그를 패자(覇者)로 만들었다. 그 공로로 범려는 상장군이 되었지만, 구천이 어려움은 같이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함께할 인물이 못 된다는 것을 꿰뚫어 보고, 구천에게 작별을 고하고 월나라를 떠나 제(齊)나라로 떠났다. 그가 떠나며 자신과 가장 절친했던 대부 ‘문종(文種)’에게 ‘토사구팽’의 이치를 비유하며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날던 새가 다 잡히면 좋은 활은 창고에 감추어지게 되고,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겨 죽게 되는 법이오. 월왕 구천의 사람됨이 목이 길고 입은 새 부리처럼 생겼으니, 이런 인물은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함께할 수가 없는 사람이오. 그대는 어째서 떠나지 않는 것이오?”
-蜚鳥盡, 良弓藏. 狡兎死, 走狗烹. 越王爲人‘長頸鳥喙’, 可與共患難, 不可與共樂. 子何不去?

정치비평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던 어떤 독설가가 이제는 자신과 관련된 여러 인생을 모두 까기 비난하는 행태를 보면서 전형적인 장경오훼(長頸烏喙)형 인간의 단면을 보게 된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처럼 세상 사람들 또한 공동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어제의 원수와 손을 잡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태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입안의 사탕이라도 빼내 줄듯한 절친이었다가 하루아침에 철천지원수가 되어 곤경에 처한 친구에게 화살을 겨누는 행태를 보노라니 인간에 대한 서글픈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평소에 알 수 없던 인간의 진면목은 ‘고난’이나 ‘영광’의 때에 쉽게 드러난다. 요즈음 뜻하지 않게 장경오훼형 인간들의 속내를 너무 많이 알게 되어 우울증으로 급사할 것만 같다.

‘애경사(哀慶事)’가 있을 때 흔히 주변 사람들로부터 ‘경사’에는 못가도 ‘애사’에는 반드시 참석한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애사에 슬픔을 함께 하겠다는 심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자신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스스로 위안을 얻으려는 속성이 있다. 타인의 애사를 위로하는 일은 인격적 성숙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에 불과하다. 맹자가 말한 바대로 우물가를 기어가는 어린 애를 보면 누구라도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인간이 본성에 내재 된 인의 단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인의 경사를 축하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만이 아니다. 자신과 비교되는 것에 대한 시기적 질투가 인간의 욕망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정한 친구를 알고자 한다면 나의 ‘애사’를 위로할 때가 아니라 나의 ‘경사’에 자기의 일처럼 기뻐하고 축복해 주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주자의 절친이었던 ‘여조겸’의 《동래박의(東萊博議)》 에 이런 말이 있다.
“환난을 함께 겪기는 쉽고 이익을 함께 누리기는 어렵다. 환난은 사람들이 다 같이 두려워하는 바이고 이익은 사람들이 다 같이 바라는 바이기 때문이다. …… 보통사람들의 마음은 전쟁을 할 때는 환난을 피해 뒷전에 물러나 있다가 승리하면 이익을 다투어 앞으로 나서서 자신의 공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도리어 남의 전공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共患易 共利難 …… 不慙己之無功 反不容人之有功

공동체의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 가운데는 장경오훼형 인간을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일이다. 아울러 자신이 모든 일의 주체가 되고자 하여 열 가지 일에 모두 간섭하고 참견하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이 전혀 없는 인생은 결단코 리더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인생은 그저 독선형 인간일 뿐이다.

나의 이웃들에게 평안을 기원하며~~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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