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용공(容共)조작 '五松會사건’

전 청와대 춘추관장, 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김기만 칼럼
지난 2004년 탈북(脫北)했고 서울시청에서 탈북민 담당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유우성 씨(43). 10년 전인 2012년 '탈북민 200명 명단을 북한에 빼돌렸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그의 삶은 암흑으로 바뀝니다. 2년 여의 법정 공방 끝에 유 씨는 2014년,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그러나 심신은 망가졌습니다.

그를 간첩으로 용공 조작했던 이시원 검사가 청와대 최고 요직의 하나인 공직기강비서관에 발탁돼 근무하는 어불성설의 인사는 전혀 다른 문제이고요.

#1. 후배들 용공 조작 사건에서 갑자기 수괴로 영입된 KBS 음악PD
지난 26일 별세해 28일 '시민민주장'을 치른 全北지역 민주, 평화, 애향운동의 큰 어른 조성용(85, 趙成湧) 선생의 경우는 유 씨와는 전혀 다른 천인공노할 용공조작의 대표적인 희생자입니다. 지난 1982년 4월 하순, 전북 군산제일고 교사 5명이 당국에 체포됩니다. 교사들이 4.19 의거 기념행사를 하는 과정에서 시인 김지하의 담시 오적(五賊)을 낭송했으며 시국토론을 했다는 것이 혐의였습니다.

주동급 교사 5명이 주로 학교 뒷산의 소나무 아래에서 자주 모였다고 해 '오송회'(五松會)라는 허구의 단체가 경찰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경찰당국은 여기서 잔머리를 또 한 번 굴립니다. KBS 근무 전후 군산제일고 교사를 잠시 했고, 사건을 꾸밀 당시에는 KBS 남원방송국 간부로 일하고 있던 조성용씨를 체포해 이 사건의 수괴로 만들어 버립니다.

#2. '五松會' 용공조작 목적은 따로 있었다!
교사 5명의 4.19 기념식과 시국토론 정도로 큰 탈없이 넘어갈 수 있던 사안이 커진 것은 5명 중 하나인 박 모 교사의 집에서 월북작가인 오장환 시인의 시집 <병든 서울>이 발견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 경찰이 이들을 집요하게 추적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교사 중 이광웅 씨가 5.18 광주 민주화항쟁 당시 광주민주화 항쟁의 핵심이었던 윤한봉 씨(당시 34세)의 매제라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실제는 아님).

그러나 경찰의 이 같은 추적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지요. 왜냐하면 도피생활 중 한때 이광웅 교사 집에서 숨어 지내기도 했던 윤한봉 씨는 1981년 4월 밀항에 성공, 6월엔 미국 워싱턴에 도착했으며, 이미 정치적 망명을 했기 때문입니다.

# 3. '제 2의 이근안'에 당한 지독했던 '고문'/40년의 심신 통증
교사 5명을 포함한 9명은 1982년 4월 하순 체포된 후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의 20여 일간 가족은 물론 변호인 접견조차 받지 못한 채, 전주 대공분실에서 지독한 고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조 선생과 교사들은 훗날 고문경찰관 신 모 씨로부터 밥 굶기고 잠 안 재우기는 물론 '써니텐', '통닭구이' 등의 혹독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 4. 산화한 교육, 언론 원로/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조 선생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1964년 27세 때 문공부 방송문화연구소 연구관이 됩니다. 이어 1965-1972, 7년간 KBS에서(서울) 프로듀서로 일했습니다. 이어 1년여 문공부 국립영화제작소 감독으로도 근무합니다.

그 뒤 1978년 1년간 군산제일고에서 교사로 일했고, 1979년부터 다시 KBS에서 근무하다 남원방송국 음악PD(과장)이던 1982년 반국가단체의 수괴라는 중죄를 뒤집어 썼던 것입니다. 조 선생은 전북지역 민주, 평화운동의 사표이자 버팀목 역할을 해오셨습니다.

조성용 선생과 오송회 관련자 전원은 지난 2007년 '진실과 화해위원회'에서 '재심'과 '명예회복'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5명 중에 전성인 선생은 이민 가버렸고 이광웅 교사는 옥살이와 고문의 후유증이 겹쳐 1992년 53세로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26일 조성용 선생도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40년간 한결같이 지역을 지키며, 밑바닥에서부터 민주, 평화, 애향운동에 헌신해온 분을 보내는 빈소 치고는 좀 쓸쓸하다는 세평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선생님, 안식을 기원합니다.

/김기만 전 청와대 춘추관장, 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