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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 수리 마하수리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칼럼
불교 경전 가운데 ‘반야심경(般若心經)’과 함께 우리나라 불자가 가장 많이 독송한다는 경전이 바로 ‘천수경(千手經)’이다. 이 경전의 첫 문장은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다. 이는 ‘입으로 지은 업(業)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참된 말’이란 뜻이다. 경전을 읽거나 불공을 드리는 불교 의식을 행하기에 앞서 입부터 깨끗이 한다는 의미이다.

불교에서는 ‘신체’, ‘언어’,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선악의 행위를 가리켜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곧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을 말한다. 어떤 일을 하려는 의지가 ’의업(意業)’이고 그것이 신체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신업(身業)’이며, 언어의 표현으로 드러나는 것이 ‘구업(口業)’이다. 구업에는 ‘거짓말[妄語]’, ‘이간질[兩舌]’, ‘욕설[惡口]’, ‘아첨하는 말[綺語]’ 등의 네 가지 유형이 있다.

이렇게 입으로 지은 업을 씻어내는 주문이 바로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修里修里 摩訶修里 洙修里 沙波訶)’이다. 이 진언(眞言)을 세 번 외면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다고 한다. 흔히 마술사들이 주문을 외울 때 쓰는 말로 와전이 되어 많은 사람이 곡해하고 있는 구절이다.

산스크리트어인 이 말은 한자로 음차한 것으로서 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수리’는 청정하다, ‘마하’는 ‘크다’, ‘수수리’는 ‘지극하다’ 또는 ‘더할 나위가 없다.’, ‘사바하’는 진언(眞言)의 내용을 결론짓는 종결의 의미로서 ‘원만하게 성취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진언의 종결형 어미로서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란 기원(祈願)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의 본뜻은 청정하고 청정해서 더할 수 없이 모든 것을 원만하게 성취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미이다.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는 사회적 파장과 영향력이 매우 크기에 그 언어가 고도로 절제되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정치인들이나 종편 패널들의 언사는 매우 험하고 폭력적이다. 걸핏하면 상대진영을 향해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막가파식 분노가 도를 넘어섰다. 뿐만이 아니라 SNS에는 정치인들에 대한 폭언이나 블랙 유머가 수시로 떠돌고,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대어 쏟아내는 욕설과 출처도 불분명한 ‘카더라 통신’의 페이크 뉴스가 횡행한다. 이런 기사를 접하다 보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나 정치판의 부조리에 대한 카타르시스보다는 그 활자화된 언어폭력의 무자비한 난폭성에 대한 혐오감과 역겨움, 인간성 상실에 대한 비애감이 들기도 한다.

스페인의 격언 중에 “화살은 심장을 관통하고, 매정한 말은 영혼을 관통한다.”라는 말이 있다. 화살은 몸에 상처를 내지만 함부로 내뱉은 말은 영혼에 상처를 남긴다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인생의 교훈을 담은 3대 필독서로 ‘명심보감(明心寶鑑)’, ‘채근담(菜根譚)’, ‘증광현문(增廣賢問)’을 꼽는다. 그 가운데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증광현문’에 이런 말이 있다.

“칼에 베인 상처는 쉽게 아물지만, 독한 말에 상처 입은 사람의 한은 지워지지 않는다.” - 刀割體痕易合 惡語傷人恨不消 -

화살이나 칼은 몸에 상처를 줄 뿐이지만 험한 말과 악담은 영혼에 상처를 남긴다. 특히 정치인들 가운데 상대를 프레임에 가두려는 의도로 하는 낙인찍기 식의 언어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빨갱이’, ‘사쿠라’, ‘주사파’, ‘토착 왜구’, ‘수박’, ‘사법리스크’ 등은 상대의 정체성에 주홍글씨를 새기려는 음모론적 어휘이다.

당(唐)나라의 재상(宰相)이었던 ‘풍도(馮道)’라는 인물은 ‘오조팔성십일군(五朝八姓十一君)’으로 유명하다. 그는 다섯 왕조에 걸쳐 여덟 개의 성을 가진 열한 명의 군주를 섬겼던 처세의 달인이었다. 그의 처세의 비결은 바로 그가 지은 다음의 ‘설시(舌詩)’에 잘 나타나 있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로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 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宇 -

그는 말조심을 처세의 근간으로 삼았기에 난세에도 영달을 거듭하며 천명을 부지하고 장수할 수 있었다. 연산군이 이 시를 근거로 신하들에게 신언패를 만들어 목에 걸게 한 일은 매우 유명한 사건이다.

‘호랑이 입보다 사람의 입이 더 무섭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리더의 말 한마디가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음을 경계한 말이다. 리더는 무엇보다 분노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의 폭발을 억누르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흥분해서 자제력을 잃는 순간 리더로서는 실격이 되고 만다. 분노는 자신의 몸을 망치는 도끼임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노자는 “다언삭궁(多言數窮)”이라 하였다. 말이 많으면 궁지에 몰리는 때가 많다는 의미로서, 말이 많으면 허물도 따라 많아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는 사람은 함부로 말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知者不言 言者不知]”라고 하였다.

폭언과 거짓말과 아첨을 일삼으며 교언영색 하는 인생을 대할 때마다 연산군의 신언패를 떠올리며,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라고 주문이라도 외워야 할 판이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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