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經) 소아(小雅) 편에 ‘녹명(鹿鳴)’이라는 시가 있다.

‘녹명(鹿鳴)’이란 ‘사슴의 울음’을 의미하는 말로서 먹이를 발견한 사슴이 다른 사슴을 부르기 위해 내는 울음소리이다.
사슴은 동물 중에 유일하게 먹이를 발견하면 혼자서 자신의 배를 채우지 않고 배고픈 동료와 함께 먹기 위하여 소리 높여 운다고 한다.
‘유유녹명 식야지평 - 呦呦鹿鳴 食野之苹’으로 시작하는 시의 첫 구절 ‘유유(呦呦)’는 중국식 발음으로 ‘yōuyōu’하는 사슴의 울음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이다. 사슴이 들판에서 맛있는 풀을 찾게 되면 ‘유유’하는 울음소리로 친구들을 불러서 함께 먹는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유래한 궁중에서 사용하는 악기 ‘녹명(鹿鳴)’은 임금이 가장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쓰는 악기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 악기를 연주할 때는 ‘녹명’의 의미를 담아서 ‘서로 나누고 도와서 함께 잘 살자’라는 의미를 전하는 것이다.
녹명의 유학적 교훈은 사슴무리가 들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풍경을 임금이 어진 신하들과 함께 어울리는 태평성대의 대동 사회에 비유한 것이다. 녹명에는 홀로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소리로 넘쳐난다. 새도 울고 닭도 울며, 심지어 하늘도 울고 바람도 운다. 좋아서 울고, 슬퍼서 울고, 이별에 울고, 감격에 운다. 시인 조지훈은 ‘울음은 지극한 마음이 터지는 구극(究極)의 언어’라고 하였다.
‘계명(鷄鳴)’은 닭의 울음이다.
‘계명축시(鷄鳴丑時)’에서 나온 말로서 하루의 시작인 새벽을 알리는 소리이다.
‘봉명(鳳鳴)’은 봉황의 울음이다.
‘봉명조양(鳳鳴朝陽)’에서 나온 말로서 봉황이 아침 햇살에 운다는 것은 영웅의 탄생이나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이다.
‘학명(鶴鳴)’ 학의 울음이다.
‘학명구고(鶴鳴九皐)’에서 나온 말로서 은거하고 있는 군자의 덕이 멀리까지 알려진다는 뜻으로 어진 사람의 명성이 임금에게 알려지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녹명(鹿鳴)’은 사슴의 울음이다.
‘유유녹명(呦呦鹿鳴)’은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울음소리이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써서 세계적인 스테디셀러 작가로 유명해진 ‘리처드 도킨스’는 이렇게 말했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보호하면 그 남이 결국엔 내가 된다.’ 서로를 지켜주고 협력하는 것이야말로 내 몸속의 이기적 유전자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약육강식으로 이긴 유전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상부상조의 협력을 통한 ‘선한 종’이 더 우수한 형태로 살아남는다는 것이 도킨스의 이론이다.
도킨스의 이론은 곧 ‘자리이타(自利利他)’이다. 이는 자신을 이롭게 한다는 ‘자리(自利)’와 남을 이롭게 한다는 ‘이타(利他)’를 합한 말로서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자리이타야말로 존재의 기준, 인류 진화의 근본적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도킨스의 이론처럼 인류는 그렇게 진화할 것으로 믿는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운 호를 가진 분의 아호가 바로 ‘녹명’이다. 그의 아름다운 울음 ‘녹명’이 이웃과 동료에게 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푸른 하늘 가득하게 울려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벽천녹명(碧天鹿鳴)’이라는 문장을 새겼다.
모처럼 의기가 투합하고 의지가 상통하는 ‘말벗’을 만났다.
‘그와 나눈 하룻밤의 대화는 10년의 독서보다 나았다.’
- 與君一夕話 勝讀十年書 -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