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아직 읽어 보지 않은 책을 읽게 되면 좋은 친구를 만난 것 같고, 이미 읽은 책을 다시 읽으면 옛 친구를 만난 것만 같다.
-吾讀未見書, 如得良友, 見已讀書, 如逢故人.
솔바람 소리, 시냇물 소리, 산새 소리, 밤 벌레 소리, 학 울음소리, 거문고 소리, 바둑돌 놓는 소리, 섬돌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눈발이 들창에 부딪는 소리, 차 달이는 소리 이는 모든 소리 가운데 지극히 맑은 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책 읽는 소리가 가장 좋다.
-松聲 · 澗聲 · 山禽聲 · 夜蟲聲 · 鶴聲 · 琴聲 · 棋子落聲 · 雨滴階聲 · 雪灑窓聲 · 煎茶聲, 皆聲之至淸者也. 而讀書聲爲最.
남송 때 사람 ‘조사서(趙師恕)’가 ‘나대경(羅大經)’에게 말했다. “나는 평생에 세 가지 소원이 있소. 하나는 세상의 좋은 사람을 모두 다 알고 지내는 것이고, 둘은 세상의 좋은 책을 다 읽어 보는 것이며, 셋은 세상의 좋은 산수를 다 구경하는 것이오.”
나대경이 말했다. “어찌 다할 수야 있겠소? 다만 이 몸이 이르는 곳마다 그저 그냥 지나치지 않을 뿐이지요” 책 읽는 사람은 마땅히 이런 생각을 지녀야 한다.
-趙季仁謂羅景綸曰: “某乎生有三願. 一願識盡世間好人, 二願讀盡世間好書, 三願看盡世間好山水.” 羅曰: “盡則安能, 但身到處, 莫放過耳.” 讀書者當作此觀.
위의 고사는 모두 청나라 때의 명유 ‘진계유(陳繼儒)’가 《독서십육관(讀書十六觀)》에서 한 말이다.
새로운 만남에는 두근대는 설렘이 있고, 해 묵은 만남은 말이 없어도 통하는 기쁨이 있다.’ 책을 읽기에 더없이 좋은 가을날, 책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현인과의 ‘만남’은 나의 사유의 세계를 숙성케 하는 영혼의 ‘맛남’이다.
그러나 사유의 세계를 숙성케 하고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만남이 어찌 꼭 책에서만 존재한단 말인가. 세상을 살면서 느닷없이 만나는 현실 세계의 소중한 ‘맛남’도 있다.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여 그 길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사람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오늘 sns를 통해 알게 된 뜻밖의 만남이 있었다. 그는 노원구에서 ‘베토벤 하우스’라는 음악감상실을 운영하는 클래식 평론가이다. 나는 셀럽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개 공개된 존재여서 유명세를 통해 직간접적인 영향을 이미 충분히 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이런 은자들은 초야에 감추어진 보배 같은 존재이다. 이들을 만나는 것은, 심마니가 산삼을 캐낸 것과 같은 신선한 기쁨과 희열이다.
때로 책을 읽거나 사람을 만나면서 행복한 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가 느낀 것을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중요한 일은 아닐지라도 그들도 내가 깨닫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사물과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다.
‘섬마을 선생님’과 ‘비 내리는 고모령’에 오랜 시간 절어있던 나의 귓등에 베토벤과 쇼팽, 모차르트와 비발디, 브람스와 슈베르트의 선율이 신의 은총처럼 강림하였다.
‘조선 천동설’만을 굳게 믿고 살았던 나는 갈라파고스의 거북이에 불과하였던 것이었다. 스크린을 통해 본 음악의 도시 ‘비엔나’는 각양의 뮤즈들로 넘쳐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신선의 세계였다.
나의 촉은 언제나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무작정 만나야겠다는 일념에 느닷없이 찾아가서 이루어진 sns 친구와의 만남은 책에서 배울 수 없었던 신선한 충격들로 가득 채워졌다. 오늘의 시절 인연은 처음 읽어 보는 좋은 책과 같은 ‘만남’이요, 삶의 지평을 열어주는 오래된 고전과 같은 ‘맛남’이었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