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나라의 거유(巨儒) 정이천은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세 가지 사례를 이렇게 정의하였다.
“젊은 나이에 높은 성적으로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첫 번째 불행이고, 부형의 지위에 힘입어 좋은 관직을 얻는 것이 두 번째 불행이며, 재주가 뛰어나 글을 잘 쓰는 것이 세 번째 불행이다.”
-少年等高科一不幸, 席父兄之勢爲美官二不幸, 有高才能文章三不幸-
위에서 말한 세 가지는 대개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세상이 선망하고 동경하는 조건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단초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위의 사례를 현재에 적용하자면 아마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첫 번째 불행은 ‘엄친아’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고시에 합격하거나 벼락출세를 하여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선민의식에 도취 되어 우월의식과 특권의식에 빠질 위험성이 매우 높다. 자기에게 부여된 권력과 지위를 당연시하는 순간 자신에 대한 성찰은 무디어지고 남의 허물은 크게 보이기 마련이다. 인생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교만이다. 성경은 교만을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규정하였다. 교만은 실패나 무능의 순간이 아니라 반드시 승리와 영광의 때에 찾아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두 번째 불행은 ‘부모 찬스’다.
부모의 재산이나 지위 덕에 출세한 사람은 능력이 자리에 미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지위가 높다 한들 역량이 부족하여 멸시와 빈축의 대상이 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동력이 부족하여 습관적으로 타의에 의존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이런 유의 인생은 야생에 착근하려는 자생력이 부족하여 보호막이 사라지면 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위인들이다.
세 번째 불행은 ‘타고난 재능’이다.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숙련도가 높고 생산력이 월등하여 남보다 쉽게 탁월한 성과를 낸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공들이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만에 빠지기 쉬운 약점이 있다. 대체로 이런 유의 인생은 타인을 무시하거나 인정치 않으려는 독단의 도그마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이다.
조선 후기 학자 황덕길(黃德吉)은 자신의 문집 『하려집(下廬集)」, 「삼불행설(三不幸說)」에서 정이천의 주장을 인용하며, 이와 같이 말하였다.
“내 몫이 아닌 기쁨, 실제보다 지나친 영예를 사람들은 모두 행운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직 군자만이 이것을 불행이라 한다.”
-非分之喜, 過實之榮, 人皆曰喜, 君子惟曰不幸-
덕의 기초가 없는 ‘名聲’과 ‘地位’와 ‘才能’은 모두 자신의 몸을 망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도 크나큰 위험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래서 선인들은 재주가 승하고 덕이 박한 사람을 일컬어 불행한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반드시 ‘재능’보다 ‘덕’이 앞서야만 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교훈이다.
행복은 노력의 산물이지만 까닭 없는 행운은 악마의 유혹일 뿐이다. 누구나 일확천금을 꿈꾸고 로또를 살 수 있지만, 로또가 당첨된다고 해서 행복을 살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삶의 선택이 자의든 타의든 ‘幸[(행)-행복]’ 과 ‘辛[(신)-고생]’은 언제나 한 획 차이에서 결정이 난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