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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으로 재계하다 - ‘치재(恥齋)’

고전번역학자 박황희 칼럼
“가장 좋은 것은 부끄러운 행실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 다음은 부끄러운 행실이 적은 것이다. 그 다음은 부끄러운 행실을 없애는 것이다. 그 다음은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아는 것이다. 그 다음은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가장 나쁜 것은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조차 아예 없는 것이다.”

泰上無恥. 其次寡恥. 其次祛恥. 其次知恥. 其次有恥. 最下者亦無恥而已矣.
-석당(石堂) 김상정(金相定)의 「치재설(恥齋說)」 중에서~,
석당 ‘김상정’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6세손으로 영조 때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이 글에서 부끄러움의 단계를 여섯 가지의 차등적 구조로 설명하고 있다.

가장 낮은 단계는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조차 아예 없는 ‘무치(無恥)’이다. 그 다음은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는 ‘유치(有恥)’이며, 그 다음은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아는 ‘지치(知恥)’이며, 그 다음은 부끄러운 행실을 없애나가는 ‘거치(祛恥)’이며, 그 다음은 부끄러운 행실이 적은 ‘과치(寡恥)’이며, 맨 마지막의 가장 높은 등급은 부끄러운 행실이 하나도 없는 ‘무치(無恥)’의 단계이다.

가장 낮은 단계와 가장 높은 단계의 ‘무치(無恥)’는 하우(下愚)와 상지(上知)의 일로서 보통 사람들과는 무관한 것이다. 이를 제외한 ‘유치’, ‘지치’, ‘거치’, ‘과치’의 단계는 보통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으로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이라면 누구나 수양이 가능한 등급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출발점은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 있는 데에서 시작된다.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 있어서, 자신의 행실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자신의 행실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서 부끄러운 행실을 점차 줄여나가고, 부끄러운 행실을 점차 줄여나가서 거의 없게 만들고, 마침내는 부끄러운 행실이 하나도 없는 단계에 이른다면 비로소 군자가 될 수 있다 하였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최소한의 단계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고, 사람으로서 최상의 단계는 부끄러운 행실이 전혀 없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귀한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아는 것이 귀한 것이며,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행실을 제거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원불교의 정산(鼎山) 종사는 부끄러움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하였다.

알지 못하면서 묻기를 부끄러워함이 ‘우치(愚恥)’요, 밖으로 드러난 부족과 행실에 나타난 과오 만을 부끄러워함은 ‘외치(外恥)’요, 양심과 대조하여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의로운 마음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 ‘내치(內恥)’이다.

김상정이 부끄러운 행실을 수양하는 ‘내적 단계의 차등’을 나타낸 것이라면, 정산 종사는 부끄러움의 ‘외적 양태의 유형’을 말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어느 것이 되었든 이는 모두 맹자에게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일찍이 맹자는 말하기를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恥之於人, 大矣.]”라고 하였으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부끄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無恥之恥, 無恥矣.]”라고 주장하였다.

옛 성현들의 道學을 통한 마음공부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귀한 자료들이다.
풍찬노숙으로 자신과 가족의 전부를 희생하여 이 땅을 지켜낸 순국선열들의 영령 앞에 형식적으로 잠시 추모하는 사이에 '비옷'을 입고도 그것이 부끄러운 일인 줄 모른다면 그는 ‘하우(下愚)’에 속하는 인생이다. 국민 세금으로 들여 미국 가서 실언을 하고도 그것을 부인하거나 외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부끄러움과 염치를 모르는 사회는 이미 병든 사회이다. 세상에는 혁명가처럼 말하고 속물처럼 행동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타인의 허물을 분석하고 조리 있게 비판한다고 해서 자신이 정의로워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여성으로 루즈벨트의 아내였던 ‘앨리너 루스벨트’를 꼽는 사람이 많다. 그녀가 말하였다.

“어둠을 저주하기보다는 촛불을 켜는 것이 낫다.”
It is better to light a candle than to curse the darkness.
‘과치(寡恥)’와 ‘내치(內恥)’를 목표로 삼았지만, 나 또한 갈 길이 너무나 먼 인생이다. 잠잠히 나를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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