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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을 쐴 겸 해서 얼마 전 용산역에서 자전거를 싣고 구례구역에서 내려 화엄사로 향하였다. 예상대로 화엄사 가는 길은 가을이 내려와 있었다.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공기는 청량했다. 화엄사 경내는 여름을 견뎌낸 수목들이 가을맞이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은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수목들이 얼마 후에는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물들어 갈 것이다. 평일의 경내는 고즈넉하고 적요했다. 숙종 때 심었다는 검붉은 매화도 봄철의 화려함은 잊은채 의연하게 서있었다.
화엄사 위 연기암은 자전거로 수 키로를 오르기에는 시간과 힘이 되지 않아 다음을 기약하고 천은사로 떠났다. 5키로 정도 떨어진 천은사 가는 길은 벚꽃 가로수가 아직 푸르름을 간직하며 반겼다. 굳이 천은사까지 힘들게 간 까닭은 숙종시대 비운의 명필 원교 이광사가 쓴 현판을 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구례로 돌아가는 길에 예기치 않게 매천 황현의 영혼을 모신 매천사를 발견하고 들러보았다. 조선의 망국 과정을 기록한 매천야록을 집필하고 자결한 곳이다.
다음 날은 구례에서 섬진강을 따라 페달을 밟아 곡성-남원-순창-담양으로 가니 영산강이었다. 저녁에는 지쳤지만 광주까지 가서 옛 친구와 밤새 정담을 나누었다. 다음 날 아침 영산강변을 따라 나주에 가니 역시 가을빛이 보였다. 나주곰탕을 맛 본 후 영산포에서 숙박하며 생애 최고의 홍어애탕도 먹었다. 이어 목포까지 영산강을 따라 가며 한반도 모양의 지형을 만들며 돌아가는 느러지 전망대에도 올라 보았다. 성종 때 표해록을 쓴 최부의 고향이었다. 영산강의 끝은 목포였다. 산업화가 뒤진 지역이라서 도시의 발전도 많이 느러졌음을 실감하였다. 목포야말로 현대판 느러지 마을인 셈이다.
70-80년대 영국에서 살 때는 봄을 알리는 노란 수선화와 튜립에 이어 배꽃, 사과꽃 ,벚꽃 등 온 국토가 온갖 꽃으로 뒤덮임을 보며 과연 영국은 온 국토가 정원임을 실감하였다. 이렇게 거대한 하나의 정원을 연상시키는 국토는 물론 오랫동안 인위적으로 세계 각국의 좋은 나무들과 아름다운 꽃들을 가져다 심은 결과이다. 영국에는 공공이나 민간이든 정원이 유난히 많은데 기하학적으로 조성된 프랑스나 독일의 정원과는 달리 자연경관을 최대로 살린 자연풍경식 정원이 대부분이다.
내가 십 수년 전 미국 LA에 부임하여 보니 미국 내에 제대로 된 한국식 정원은 하나도 없으나 일본식 정원은 수 백개가 조성되어 있어 일본의 국가 이미지 향상에 큰 공헌을 해 왔음을 알게 되었다. 중국 문명권에서는 중국과 한국, 일본이 자체적인 정원양식을 주장하는데 제일 늦게 백제와 당.송에서 정원 개념을 도입하여 발전한 일본식 정원이 서양에서는 세계 최고의 정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모든 중요 도시에는 일본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대부분 일본정원의 아름다움에 반한 미국인들 스스로 조성한 것들이다. 유명한 LA카운티 수목원에 한국정원을 조성하고자 현지 한인들과 협력하여 5천평 정도의 부지도 할애 받았다.
국내외에서 예산 확보를 위한 노력을 하던 중에 2008년 정권 교체로 갑자기 내가 본국으로 귀임 발령을 받아 더 이상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마감된 것이 유감스럽다. 서양에서도 자국식 정원 역사를 가진 나라는 극소수이다. 오랜 정원의 역사를 가진 우리가 서양에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영구히 소개할 수 있는 규모 있는 한국식 정원을 건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 큰 문제는 국내에도 해방 이후에 제대로 된 아름다운 전통정원이 별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창덕궁 후원이나 담양 소쇄원 등 극소수의 정원이 남아 있으나 이를 계승 발전시킨 정원은 소규모지만 아름다운 에버랜드내 ‘희원’ 정도가 아닌가 한다. 자전거를 타고 서울숲이나 가평의 자라섬에 자주 가면서 느끼는 바이지만 왜 우리는 이 넓은 부지에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아름다운 한국정원을 만들지 않는가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널리 알려진 작정가作庭家가 띄지 않는다. 한류를 지속적으로 세계문화계에 소개하려면 그 뿌리가 되는 전통문화의 보고들이 현대에도 계속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지 생각해 본다.
/전 주 노르웨이대사, LA총영사 최병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