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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헤이리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서점이라 할 한길사 북하우스가 있다. 2006년 가을에는 김 사장의 부산상고 2년 후배인 노무현 대통령이 주말에 북하우스를 방문했다. 대통령과 낙백시절부터 잘 알긴 하지만 현역 대통령이 두어 시간 머물면서 시종 ‘선배님’ 이라고 호칭해 난처했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북하우스'라는 매혹적인 책방 말고도 서울 순화동에는 현대 대도시의 책 유토피아라 할 또 다른 인문예술공간 순화동천이 자리잡고 있다.
'순화동천'은 김언호 사장의 절친이자 이 시대 최고 서예가의 한 분인 하석(何石) 박원규 선생의 작명이다. 김 사장은 "동천은 신선들이 사는 곳을 말한다"며 "헤이리나 순화동이나 책의 신선들을 위한 곳"이라고 말한다.
불광불급. 미쳐야 미친다.
김언호 사장은 분명히 책에 미쳐 산다. 그것도 50년 가까이를.
김 사장은 틈만 나면 세계 각국의 최고 서점을 찾아다니며 전통과 역사와 장점을 기록하는 독특한 여행을 즐긴다.
벌써 6년 전인 2016년 '세계서점기행'이란 500쪽의 책을 냈던 김 사장은 이 달 초부터 헤이리 북하우스에서 <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Chorus of Books)라는 제목의 책 사진전을 열고 있다.
장엄하다. 상해, 브뤼셀, 동경, 런던, 파리, 튀빙겐, 난징, 웨일스, 마스트리히트, 뉴욕 등 세계 최고 책방들의 향연은 책 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황홀경을 주고도 남는다. 1902년 문을 연 후 전쟁 중에도 한 번도 문닫지 않았다는 도쿄 기타자와 서점 사진은 장엄을 넘어 종교적인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김 사장에게 "동아일보에서 쫓겨나기 잘 했다"고 덕담하는 지인들도 있다고 한다. 그대로 있었으면 고참기자로 끝났을 텐데 오히려 밖에 나와 출판으로 한국지식사에 큰 획을 그으며 공헌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슬러 가보면 그는 학창시절부터 책과 딱 붙은 떡잎이었다. 부산상고는 지금의 서면의 중심 롯데호텔 자리였는데, 서점만 70여 곳이 있었다. 고교 때 함석헌 선생의 <씨알의 소리>와 장준하의 <사상계>를 읽었다. 지금도 외국여행 때 함 선생의 <씨알에게 보내는 편지>를 갖고 다닌다.
김언호 사장은 점차 책을 읽지 않는 위기적 상황을 걱정하면서도 뜻밖의 낙관론도 펼친다. 결국 모든 인문, 예술, 사회, 과학의 원천은 책이다. 이를 거듭 인식하는 흐름도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원 소스 멀티 유즈'(OSMU, One Source Multi Use)도 그 원천은 결국 책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국내에서도 조용히, 독특한 책방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오는 경우가 전보다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
그는 이 땅의 출판 중추를 이룩해 준 선배 출판사들. 을유문화사, 현암사, 신구문화사, 박우사, 정음사, 일조각 등을 영웅처럼 모신다. 지상의 정신과 지혜, 인간의 삶을 쇄신하는 이론과 사상이 어깨동무하는 책의 숲을 지켜온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김언호 사장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자신을 '독서기계'라고 부른게 너무 기분좋다"고 말한다. 故 강원용 목사님이 북하우스 착공식에서 <신 실크로드의 출발점>이라고 방명록에 쓴 것도 잊지 않고 있다.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을 기획하다 보니 3천5백종에 이르렀다는 이 멋지게 미친 사나이.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을 우리 삶의 한가운데 놓는다"는 생각으로 책도 쓰고 책 사진전도 마련한다는 이 절대광인.
이 책쟁이가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 역시 책을 떠날 수가 없었다. 공자 말씀인 이문회우, 이우보인(以文會友 以友輔仁). <책은 친구를 불러모으고 친구들은 우리의 정신을 고양시킨다>.
문화부 장관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책 광인 김언호 사장에게 최고 문화훈장을 허하시오!
/김기만 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청와대 춘추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