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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충수’는 가짜 악사로 머릿수를 채우는 행위를 말한다. 능력이 없는 자가 능력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거나, 실력이 없는 자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서 《한비자(韓非子)》 〈내저설상(內儲說上) · 칠술편(七術편)〉에 나오는 고사성어이다.
전국시대 제(齊)나라 선왕(宣王)은 관악기의 일종인 ‘우[竽; 생황]’ 연주를 좋아했다. 독주보다는 합주를 좋아하여 매번 3백 명의 악사에게 합주로 연주하게 하였다. 그러나 3백 명의 악사 가운데 ‘남곽(南郭)’이라는 자는 생황을 전혀 불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악사 중에 섞여 번번이 립싱크 연주로 흉내만 내면서 몇 해 동안 후한 대접을 받으며 지냈다.
그러다 제선왕(齊宣王)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이 제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민왕(湣王)이다. 민왕 역시 생황 연주를 좋아하였지만, 공교롭게도 그는 합주보다는 독주를 좋아하였다. 그는 매번 3백 명의 악사들을 하나하나 불러 놓고 독주를 하게 하였다. 그러자 ‘남곽처사’는 하는 수 없이 생황을 버리고 도망을 치고 말았다.
나는 십수 년 전, 교회에서 성가대를 한 적이 있었다. ‘음치’·‘몸치’·‘박치’의 삼치를 완벽하게 장착한 나는 음역이 고음은 ‘솔’ 이상 안 올라가고 저음은 ‘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전형적인 음치였다. 그런 나를 픽업한 성가대장은 자신의 일생에 최대 실수였고, 내게는 일생 최고의 수치가 되었다. 내가 고음이 안 된다고 하자 그럼 베이스를 맡으라고 하며 흔쾌히 권하였지만, 나는 고음만 불가였던 것이 아니라 저음 또한 불가였다.
절대 음감은커녕 자신의 음정조차 온전히 구사할 줄 몰랐던 나는 옆 사람의 소리의 크기에 따라 베이스든 테너든 심지어는 소프라노까지 취향에 맞는 대로 따라 부르다 삑사리를 내기가 일수였다. 내가 ‘남곽처사’임을 미리 밝혔어도 억지로 머릿수를 채우고자 하였던 성가대의 남사스러운 추억은 여기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최근 한 달여 만에 두 번의 페북 징계를 당하였다. 성경 속 ‘예수의 언어’와 일국의 ‘통치자의 언어’를 번갈아 사용하였는데, 그것이 커뮤니티 규정 위반이라 하여 페북 정지를 당한 것이다.
‘울고 싶은 놈 뺨 때린다’고 이참에 페북을 정리할까 싶은 맘이 없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간 성원해준 독자들의 성원과 아직 다 만나보지 못했던 호기심 천국의 페친들이 맘에 걸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싶어 결국은 내 생각을 교정하기로 하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덕분에 ‘좋아요’가 반드시 동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좋아요’를 품앗이처럼 하고 있었던 다수의 페친들과 ‘좋아요’를 품앗이 해주지 않아 페절한 페친이 누구인지조차 알게 되었다. 아울러 자신의 소리를 전혀 내지 않는 ‘남곽처사’들이 수천에 이르고 있음도 깨닫게 되었다.
장온고(張蘊古)의 《대보잠(大寶箴)》에 “여덟 가지 산해진미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도 먹는 것은, 입에 맞는 것뿐이다[羅八珍於前 所食不過適]”라고 하였다. 어부가 바닷가에 그물을 던진다고 하여 바닷가의 모든 고기를 다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겨우 그물에 걸리는 고기만을 상대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어찌 ‘남곽처사’가 페북 세계에만 있겠는가. 윤석열 정부 또한 도처에 잠입해 있는 남곽처사들의 불순한 암약 행위로 정부의 조직이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다. ‘외교 참사’에 이은 현무 미사일 ‘낙탄’에 대한 책임은 말할 것도 없고, 매일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남곽처사들의 립싱크 탄로로 말미암아 국가조직을 백척간두의 위기에 올려놓은 듯하다. 아마 윤석열 당사자 본인이야말로 가장 능력 없고 준비 안 된 ‘남곽처사’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전국시대 말기 법가사상을 추구했던 한비자(韓非子)는 위의 고사와 함께 군주들에게 일곱 가지 ‘술(術)’을 설파하였다.
첫째 여러 신하의 말을 참조하고 관찰하라. 둘째 죄 있는 자는 반드시 처벌해라. 셋째 공을 세운 자는 반드시 상을 주어 칭찬해라.
넷째 신하가 한 말은 신중하게 듣고 실적을 따져라. 다섯째 의심하는 신하들은 거짓으로 잘못된 일을 시켜볼 것. 여섯째 아는 것을 감추고서 물어볼 것. 일곱째 말을 거꾸로 하여 반대되는 일을 시켜볼 것.
한비 사상의 주체는 ‘법술 사상’이다. 그는 상앙(商鞅)의 ‘법(法)’과 신불해(申不害)의 ‘술(術)’, 그리고 신도(愼到)의 ‘세(勢)’ 이론을 흡수한 뒤 그 기반을 토대로 집대성하여 법가의 정치이론 체계를 완성하였다.
한비자의 고언을 받아드린 진시황은 ‘법술세(法術勢)’ 사상을 통해서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 건설이라는 패업을 완성하였다. 유가의 예(禮)는 계층 간의 권리와 의무를 말한다고 볼 수 있지만, 법가의 법(法)은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강제성을 띠는 것으로 현대의 법치주의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나는 윤석열 정부가 한비자의 충언을 본받을 것이라고는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는다. 스스로 ‘나는 하늘이 낸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그에게서 고리타분한 고전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아빠진 잔소리쯤으로 진부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모름지기 자신의 정체가 ‘남곽처사’임이 온 천하에 탄로가 나는 것은 그야말로 눈앞에 다가선 시간의 문제이다. 아마도 그의 말년이 왕실에서 굶어 죽었던 제환공(齊桓公)보다 훨씬 더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을 뒤늦게라도 고전을 통해서 역사의 이치를 배우기를 바랄 뿐이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