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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중구난방’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대개 ‘질서 없이 정리가 안 된 어지러운 상태나 상황’ 등을 연상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의 본뜻은 원래 그런 말이 아니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의하면 주(周)나라의 여왕(厲王)은 폭정을 일삼은 폭군이었다. 소공(召公)이 여왕에게 여러 차례 간언하였으나 그는 폭정을 멈추지 않고 무당을 데려와 점을 치게 하여 불만을 품은 사람들을 색출하여 모조리 처단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에 대해 비방하는 자가 없게 되자 태평성대라며 득의가 만만하였다.
이에 소공이 간하기를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냇물을 막는 것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냇물을 둑으로 막았다가 무너지면 상하는 사람이 반드시 많아지게 되는데, 백성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냇물을 위하는 자는 물이 잘 흐르도록 물길을 터 주고, 백성을 위하는 자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냇물을 막는 것보다 어렵다. '방민지구 심어방천 - 防民之口甚於防川’이라는 말이 바로 ‘중구난방(衆口難防)’의 기원이다. 즉 대중의 입을 막아서 언로를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순방 중에 회견장에서 시정잡배들이나 쓸 법한 비속어를 사용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비속어 사용이 아니다. 대통령도 ‘욕’할 수 있고 ‘실수’도 할 수 있다. 비록 국가의 품격을 떨어트리고 국민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었지만, 자신의 실수를 깨끗이 인정하고 사과하였더라면 해프닝에 그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문제는 그의 '거짓말'과 '대국민 협박'이었다. 자신이 한 말의 발성조차도 멀쩡한 정신으로 부정하였다. ‘이 새끼’는 우리 국회의원에게 한 것이었으며, 그마저도 ‘이 사람’이라 했고 ‘바이든’은 ‘날리면’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미 의회나 바이든에게 한 욕은 국가적 분쟁의 소지가 있으니 인정해서는 안 되고 우리 국민이 뽑은 선량(選良)은 ‘이 새끼 저 새끼’ 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그것이 ‘바이든’이든 ‘날리면’이든 중요한 것은 청력의 문제가 아니다. 본질은 일국의 대통령이 사용하는 천박한 언어습관에 있는 것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발언을 거짓말로 호도하며 진실을 알렸던 국민과 언론을 권력의 힘으로 겁박하는 것이다.
우리의 불행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윤핵관’과 ‘윤핵관 호소인’을 자처하는 일군의 소인배들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기는 ‘지록위마’의 아첨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져 이 나라의 국민 됨을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이다.
진시황은 불로장생의 영약을 구하고자 ‘노생’이라는 방술사를 삼신산에 보냈다. 노생은 삼신산 중 하나인 봉래산에서 ‘선문고’라는 선인을 만나 《천록비결(天簏秘訣)》이라는 책을 얻어 가지고 왔다. 모든 석학을 동원해 책에 담겨 있는 뜻을 해독하려 하였지만, 누구도 해답을 얻지 못하였다. 오랜 시간 동안 연구한 끝에 얻은 것이라고는 ‘망진자호(亡秦者胡)’라는 글귀뿐이었다.
진시황은 이 말을 ‘진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흉노[胡]’라고 여기고 즉시 만리장성을 쌓았으나 그 ‘호(胡)’는 다름 아닌 자신의 둘째 아들 ‘호해(胡亥)’였다. 진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흉노가 아니라 환관 조고에게 놀아났던 무능한 ‘호해’였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성서에도 ‘천하에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라고 하였다. 세상천지 어디에 완전한 인생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유가에서는 ‘과실이 없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과실을 고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不貴無過貴改過]’하였다.
자신의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끌을 찾아내어 무자비하게 단죄하던 칼잡이 검사가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의 뇌리엔 온통 ‘건진’과 ‘천공’ 같은 술사들의 무속과 영매의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국민을 영매의 힘으로 속일 수 있다고 만만하게 보는 것이다. 검사 시절 피의자를 겁박하며 마치 자신이 정의의 사도인 양 군림하던 그 안하무인하고 오만한 버릇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 채 국민과 언론을 권력의 칼로 협박하며 탄압하려는 것이다.
주나라를 망하게 했던 여왕(厲王)의 사례에서 보듯이 대중의 입을 막는 것은 하천을 막기보다 어려우며, 한번 둑이 터지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되고 만다. 대통령과 여당은 더 이상 언론을 겁박하여 대중의 입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
나도 소음이 제거된 그 녹음을 반복해서 들어보았다. 행여 경솔한 판단일까 싶어 10여 차레나 반복해서 들었어도 분명한 것은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 쪽팔려서 어떡하나” 였다. 더 이상 반복해서 듣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손바닥에 왕자를 새겨 국민을 잠시 속일 수는 있었을지 모르나 그 손바닥으로 하늘을 영원히 가릴 수는 없는 법이다. 진솔한 사과와 반성만이 목숨을 부지하는 길이다.
아울러 유약한 민주당 ‘생계형 직업 정치인’들에게 권한다. 국정감사장에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에게 감히’라며 눈을 부라리고 호통을 치던 그 기개는 어디 가고 나라 밖에서 대통령에게 ‘이 새끼’ 소리를 듣고도 그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댓구 한마디 못하는가?
'정언유착' 프레임에 휘둘려 겨우 외교부 장관이나 실무자 처벌 만을 주장하지 말고 당장 ‘대통령 비속어 진위 특검’을 발의하라. 국내외의 음성분석자들을 총동원해서라도 발성의 실체를 분석해내고 만약 그것이 대통령의 거짓말로 드러날 경우, 마땅히 ‘탄핵’을 시행하라.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는 것은 '언론 보도에 의한 한미 동맹의 훼손'이 아니라 ‘윤석열 씨의 비속어 논란과 거짓말’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고전번역학자 박황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