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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태어났으며 삶은 살 가치가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은 누구나 철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 존재에 관한 근본적인 이 질문에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고 여기에서 해방되어 보다 시급한 일상생활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나 이 의문에서 헤어나지 못해 평생 고뇌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에 대한 부정적인 답에 이르러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진화론자인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나 '지상최대의 쇼' 등 여러 저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나에게는 만족할 만한 답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그 답을 알았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의문의 본질은 그 문제에 대한 과학적 해답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관에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모든 생명체는 지구가 태양에서 떨어져 나와 열이 식고 물이 고이기 시작했던 30여억년 전 어느날 여러 무기물들간의 화학적 반응에 의하여 우연히 발생한 지극히 작은 유기물질에서 태어났다.
그 후 수십억년의 긴 세월간 끊임없이 진화되어 현재의 수많은 생명체로 분화되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동식물을 막론하고 그 최초의 유기물질을 같은 조상으로 모시고 있는 셈이다. 그 유기물의 탄생일이 언제인지 가정하여 지상의 모든 생물이 모여 공동 기념행사라도 해야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진화론은 인간이 단지 고릴라 등 유인원과 유전자가 90몇% 같을 뿐 아니라 나무 등 식물과도 90% 이상 같은 유전자로 구성 되어 있다는 사실이 증명하고 있다. 그 최초의 생명체는 태어난 순간부터 번식을 최우선 목표로 하기 시작해서 지구가 겪은 그 많은 시련(기후변화, 혹성충돌, 지진, 화산폭발 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최초의 유기물질이 번식해서 만들어 낸 생명체의 유전자는 동식물의 모든 종을 막론하고 4종류의 DNA에 다들어 있다니 허망하기도 하다. 그 4개가 어떤 서열로 어떤 꼬임의 형태를 갖는가에 따라서 나타나는 표현형(phenotype)이 인간 개, 돼지, 장미, 은행나무, 박테리아가 된다니 환경론자가 아니라도 우리의 형제인 타 동식물을 폄하하거나 함부로 다뤄서는 안될 것이다.
민중의 99%는 개 돼지라고 함으로써 '개 돼지를 폄하한 죄(?)’ 로 최근 파면 당한 공무원에게 이제 시간적 여유가 생겼으니 우선 유전자 공부부터 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가 '챨스 다윈'의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이나 도킨스의 책들을 읽었던들 우리와 유전자가 99% 이상 같아서 형제나 다름없는 개 돼지를 그리 우습게 보지는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쓸데없는 물의와 개인적 고초를 겪지는 않았을 것이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박테리아나 나무, 개, 돼지보다 유전학적으로 더 우수하다고 볼 근거는 없다고 한다. 자연에서는 오래 살아남는 놈이 잘 난 놈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발생한지 수십만년 밖에 안된 인간은 이제 시작이니 수억년을 이 험한 세상에서 버텨온 고사리나 은행나무에게서 살아남기 위한 많은 지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어쨋든 우리 인간들이 현재는 지상의 모든 생명체를 사실상 지배한다고 해서 너무 우쭐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간(homo sapiens)이라는 종(species)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다른 종에게 왕좌를 내줘야 할 것이다. 현생 인류가 유인원에서 진화해서 발생한지는 2-30만년 정도밖에 안되니 종의 평균 수명으로만 보면 아직 2백 수십만 년을 더 살 수는 있을 것이나 그것이 인류가 현재와 같은 우월적 위치를 내내 유지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연이 더 선호(자연선택 nature's selection)하거나 우리를 누르고(생존경쟁 struggle for existence), 또는 돌연변이(mutation)에 의해서 지상의 왕자로 군림할 새로운 종이 나타나서 우리를 식량으로 사냥하거나 노예로 부리며 고도의 문명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민중의 99%뿐만 아니라 100%가 개 돼지 취급을 받으며 살테니 이러한 의미에서도 개 돼지를 깔보거나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육부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진화론의 원리를 더 잘 가르치려 노력하기 전에 우선 교육부 간부들부터 모아놓고 이에 관한 특강을 받도록 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인류도 개 돼지와 마찬가지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보이지도 않는 생명의 씨앗이 30여억년 전에 뿌려져 열심히 생식활동을 하여 여기까지 온 것 뿐이다. 그러니 나는 왜 태어났는가 물으면 조상들의 열성적인 짝 짓기의 결과라고 밖에 할 수 없고 그들은 왜 그렇게 열심히 짝짓기를 했냐고 나무라더라도 유전자가 그렇게 하라고 시켜서 그리 한 죄밖에 없다. 그렇게 태어난 삶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도 우리의 조상처럼 열심히 유전자를 후세에 퍼뜨리는 활동을 하는 것이 우리가 생명체로서 가진 최선, 최상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일 것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태어난 이상 그 섭리를 잘 생각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선이 아닌가 한다.
과학을 떠나 종교적 차원에서 문제를 논하는 것은 별개이니 종교에서 보다 나은 해답을 찾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게 어려운 사람들은 진화론의 원리를 생각하며 지구를 집으로 삼고 있는 다른 모든 생명체들과 공존하는 지혜를 찾는 게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