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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한 자라고 반드시 ‘복(福)’을 받는 것도 아니고 ‘악(惡)’한 자라고 반드시 ‘화(禍)’를 당하는 것도 아니다.
군자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군자는 차라리 화를 당할지언정 결코 악한 일을 하지 않는다. 성실하고 정직한 자는 궁하고, 아첨을 잘하는 자는 통한다.
군자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군자는 차라리 궁할지언정 결코 아첨을 즐겨 하지 않는다.
다만 도리가 마땅히 그러하다는 것을 알 뿐만 아니라 또한 그의 마음에도 자신이 용납하지 못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善者不必福, 惡者不必禍. 君子稔知之也, 寧禍而不肯爲惡. 忠直者窮, 諛佞者通. 君子稔知之也, 寧窮而不肯爲佞. 非但知理有當然, 亦其心有所不容已耳.]
…中略…
군자가 ‘선(善)’을 행하는 것은 도리로서 마땅한 것이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지~,
‘복(福)’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며, ‘록(祿)’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군자가 ‘불선(不善)’을 행하지 않는 것은 도리로서 마땅히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행하지 않는 것이지~, ‘화(禍)’를 두려워해서도 아니며, ‘죄(罪)’를 멀리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君子之爲善也, 以爲理所當爲, 非要福, 非干祿. 其不爲不善也, 以爲理所不當爲, 非懼禍, 非遠罪.]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 여곤(呂坤)의 『신음어(呻吟語)』에 나오는 말이다.
책 서문에 말하기를 “‘신음’이란 병이 든 환자가 아파하며 앓는 소리를 말한다. 병 중의 고통은 환자만이 알고 타인은 몰라준다. 또 그 아픔은 병이 들었을 때만 느끼고 병이 나으면 곧 잊어버린다. 사람이 병이 들어 앓을 때의 고통을 잊지 않는다면 모든 일에 조심하여 다시는 괴로움에 시달리는 시련을 겪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병이 낫고 난 뒤에도 아플 때의 고통을 잊지 않을 수 있다면 ‘신음어’란 더 이상 환자의 고통 소리가 아닌 세상을 깨우치는 ‘경세어(警世語)’인 것이다.
수일 전 종합검진의 결과가 나왔다. 우울증이 심한 상태이니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한단다. ‘검찰 공화국’이 들어서고 무속이 권력자의 정신세계를 지배하여 ‘검폭(檢暴)’이 횡행하는 난세에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국가 공권력이 국민의 안위를 보호하지 아니하고 권력자의 심기와 조직의 정치적 이익만을 수호하는 ‘검란(檢亂)’의 시대에 어찌 고통 속에 신음하는 소리조차 없을 수 있으며, 권력이 무속의 지배를 받아 무속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이 어처구니 없는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고서 어찌 우울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저자의 신음하는 소리에 매우 공감하는 바가 있으며, 또한 나의 우울한 심사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여기에 이런 넋두리를 늘어 놓는다. 요즘 의식을 갖춘 강호제현의 심사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텐데 어떠하신가?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