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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미 일변도 시대의 골드버그 주한 美대사

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청와대 춘추관장 김기만 칼럼
중견, 원로 언론인단체인 관훈클럽이 최근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66)를 초대해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7월 1일 부임해 100일을 넘긴 그는 대사로 올 때 세 가지 측면에서 관심을 받았다.

첫째는 그간 1년 반의 지나치게 길었던 대사 공백을 메우며 부임한다는 사실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가 임명했던 해리 해리스 전 대사를 작년 1월 불러들인 뒤 무슨 영문인지 무려 1년 6개월 동안 주한대사 자리를 비워 놨었다. 이 같은 장기간 공석은 거의 전례 없는 일로 큰 외교적 결례로 간주된다. 미국이 왜 그랬는지 시원한 대답이 없다. 골드버그 신임 대사에 관한 두번째 관심은 뜻밖에도 그가 동성애자라는 데 쏠렸다. 그는 명쾌하게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이다. 배우자와 함께 하는 미 국무부에서의 취임선서도 혼자 했고, 물론 서울에도 혼자 왔다.
그러고 보니 미국이 동성애자 대사를 한국에 보내기 위해 사전에 의도적으로 했던 일들이 몇 가지 떠오른다.

우선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왔던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의 남편 엠호프는 취임식 후 서울 광장시장을 구경하는 길에 가이드로 동성애자인 방송인 홍석천 씨를 썼다. 또 지난 6월 방한한 웬리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짧은 일정을 쪼개 국내 성소수자들(LGBT)과 성전환 방송인 하리수 씨를 만나고 갔다. 골드버그 대사 부임을 고려한 원려(遠慮)였던 셈이다.

주한 미 대사관은 골드버그 대사 부임 1주일 후인 지난 7월 8일, 우리는 소수자 권익확장에 관한 미 정부의 노력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쿵짝이 쩍쩍 맞는 셈이다. 한미동맹을 보물단지처럼 끼고 도는 현 보수 정권에 미국이 던지는 성소수자 정책은 풀기 쉽지 않은 고차방정식이 될 듯하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이 골드버그 신임 대사에게 가장 주목하고 신경을 써야 할 대목은 그가 '저승사자'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너무 잘 알려진 '대북(對北) 초강경파'라는 사실이다. 정통 외교관으로 지난 1994-1996년 리차드 훌브르크의 특보(特補)를 했으며, 2009-2010년 유엔(UN) 대북제재 이행담당 조정관으로 일할 때는 대북 금융제재를 총괄하며, 대북제재 결의안(1874호)을 주도했던 장본인이다. 북한을 '불량정권'(Rogue Regime)이라 부르며, 북한이 그리 싫어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밀어부친 사람이기도 하다.

솔직히 많이 걱정된다. 강경파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매파'에 속하는 그가 입을 벌릴수록 남북관계 경색은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가 우리나라 대통령실의 드러난 매파인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등의 강경노선 외교안보 라인과 결합할 경우 남북관계 개선 전망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골드버그 신임 대사는 지난 100일간 미디어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움직였다. 관훈클럽 토론회는 對언론 공식 데뷔전인 셈이다.

그는 "임기 중 최대한 많이 여행하면서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듣고, 공공외교도 강화하고 싶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는 볼리비아, 필리핀, 콜롬비아를 거쳐 네 번째 대사로 올 만큼 노련하고 경험 많은 베테랑 외교관이다. 그만큼 다소는 유연하리라는 기대도 해본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그의 강경일변도 대북정책이 유지되는 가운데 한미동맹 강화에 매달려 있는 현 정권의 정책과 결합할 경우, 더 가파른 대치와 대결의 치킨게임이 벌어질 게 불 보듯 뻔하다. 미국이 왜 1년 반씩 대사를 비워두었는지와 한국에 부임한 골드버그 대사의 속내가 자뭇 궁금하다. 

한국에서의 그의 행보를 지켜볼 일이다.
 
/김기만 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청와대 춘추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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