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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조(謹弔)’라는 말은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삼가 슬픈 마음을 나타낸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근(謹)’은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며 상대를 공경한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조선 시대 유자(儒子)들의 일상사였던 간찰(簡札-손편지)에도 상투적으로 쓰던 말이 ‘근재배상서(謹再拜上書)’이다. 삼가 두 번 절하고 편지를 올린다는 뜻이다. 실제로 조선의 유자들은 편지에 두 번 절하고 봉한 뒤에 인편을 통해 편지를 보냈다. 이때의 ‘근(謹)’은 자신에 대한 자성과 함께 상대에 대한 지극한 공경의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조문하는 리본에 ‘근조(謹弔)’라는 단어를 빼고 검정 리본만을 착용하는 것은 ‘당신의 죽음이 안 됐기는 하지만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표식인 것이다. ‘이태원 참사’를 두고 애도만 하고 원인 규명이나 책임의 소재를 물어서는 안 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들이 연일 방송과 SNS에 쏟아지고 있다.
환자를 ‘문병(問病)하다’ 할 때의 ‘문(問)’은 병의 정도나 상태 등을 묻고 그 고통에 공감하며 위로한다는 뜻이다. ‘문안(問安) 인사’라고 할 때의 ‘문(問)’은 상대의 ‘안부를 묻고 처지를 공감하는 것’이지 단순히 고개만을 숙여 경례의 표시를 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상(問喪)’ 이나 ‘조문(弔問)’의 ‘문(問)’은 죽음의 원인이나 상태 등을 묻고 망자에 대한 슬픔에 공감하며 유족을 위로한다는 말이다. 죽음의 진상에 대한 ‘의문’과 ‘애도’는 슬픔과 상처에 공감한다는 의미에서 본질상 같은 의미의 하나의 단어인 셈이다.
위패와 영정도 없는 곳에서 ‘근조(謹弔)’라는 단어조차도 뺀 채 검은 리본을 달고 거지 동냥하듯 하는 가증스러운 참배로는 결코 유족에게 위로가 될 수 없다.
‘참사’를 ‘사고’로 칭하며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기하고자 하는 그들의 속내는 이일이 자신들과 무관한 일임을 나타내고자 하는 발상에 불과하다.
그렇게 철옹성 같은 경계의 벽을 치고 강 건너 불구경하며, 도덕 불감증이라는 불치병에 걸린 윤 씨 일당과 졸개들의 작태를 보노라니 이 나라의 국운이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이 설령 민주주의의 개념은 아는지 몰라도 ‘공화(共和)’의 의미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종족들이다. 민족공동체라는 것은 ‘네가 죽으면 나도 죽는’ 운명 공동체임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이기적 욕망으로 똘똘 뭉쳐진 천박한 자들인 것이다.
이들은 권력의 단맛만을 알뿐, 권력에 대한 무한 책임과 의무는 나 몰라라 하는 매우 비도덕적이고 반윤리적인 혐오스러운 종자들일 뿐이다. 일각에서는 총리를 비롯한 장관과 주무 책임자들의 사퇴를 주장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한 놈도 사퇴하지 말고 마르고 닳도록 권력을 향유하고 인권을 유린하며 패악질을 계속 일삼기를 바란다. 국민의 분노가 결집 되고 인내의 한계가 임계점에 다다르는 날 천지가 개벽할 마그마가 활화산처럼 솟아오를 것이다.
그날, 영정과 위패조차 없는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서 ‘근조(謹弔)’ 빠진 검은 리본을 달고 나의 핸드폰 컬러링에 나오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석양의 무법자’를 들으며,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유유히 휘파람 불어가며, 다른 한 손으로 짐짓 여유 있게 국화꽃을 건네리라. 당신을 위한 제단에 국화가 올려지는 그날까지 만수무강에 기스나지 않도록 강녕하시기를~, 당신들의 천수를 위해 ‘북향사배’를 올리며~,
/고전번역학자 박황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