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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와 박정희, 안중근과 伊藤博文, 김좌진, 이순신

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청와대 춘추관장 김기만
43년 전인 1979년 10월 26일 저녁, 서울 궁정동 안가(安家)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 살해한 것은 상식에 속할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그보다 정확히 70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전 일본 총리이자 제1대 조선 총독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일본 추밀원 의장을 육연발총으로 살해한 것도 웬만큼은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속의 10.26에는 또 다른 두 개의 큰 기념비적 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그 하나는 1920년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이 이끈 독립군 북로군정서가 일본군을 크게 쳐부순 이른바 청산리 대첩이 있었던 날이 또 10.26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3백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거북선으로 일본 전함 133척을 대파한 울둘목의 명량(鳴梁)대첩 대승이 1597년 10.26이다.

일년 365일 중 우리 역사에서 10.26처럼 중차대한 대사건이 겹겹으로 중첩된 날도 없다는 생각이다. 김재규를 의사(義士)로 보느냐를 둘러싼 논란은 아직도 미완으로 진행중이지만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던 박정희의 철혈 군사독재 정권이 김재규의 탄환에 의해 무너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또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4.19가 선봉이었고, 박정희 시해와 1987년 6월 항쟁이라는 피를 먹고 만들어진 멀고 험난한 길이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고 하겠다.

한편, 청산리 대첩에 관해서는 학계에서 다소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대첩으로 불릴 정도의 엄청난 승리는 아닌데, 여러가지 이유로 많이 부풀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주장을 펴는 일단의 연구자들은 '청산리 전투'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간명하다. 당시 중국 길림성 청산리 일대에서 10월 21일 시작되어 26일 종료된 독립군과 일본군의 격돌에서의 사상자수가 너무 과장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은식 선생은 '독립운동지혈사'에서 일본군 "1,600 명을 사살했다"고 썼다.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 싸움을 이끈 이범석 장군은 자서전에서 "3,300명을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창욱 중국 연변대 교수 등은 "청산리 전투 승리는 높이 산다"면서도 "당시 일본군의 수가 2,500여 명인데 그만큼 사살했다는 건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청산리 전투에서의 일본군 사망자를 11명(부상 24명)이라고 기록한 일본의 자료 또한 엉터리이지만 독립군 병력수가 6백에서 7백명 사이로 일본군의 4분의 1이었던 것을 생각할 때 상식을 벗어나는 사상자 수는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청산리 전투가 우리 독립운동사의 청사에 남을 승리라는 것은 확실하게 인정하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제 기관총과 권총 등으로 무장한 독립군은 10월 21~26일 그야말로 혈전을 벌였다. 심지어는 전투 중 밥 먹을 시간도 없어 굶주림이 계속되자 마을 아낙들이 치맛 속에 주먹밥을 싸와 독립군들 입에 넣어줄 정도였다고 한다.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몇 명을 사살했는지 그 수를 정확히 밝혀내는 것이 무슨 대수랴. 청산리 대첩은 이미 한국인의 가슴에 찬연한 승리와 자긍심으로 남아있다.

1597년의 명량대첩은 실은 음력으로 9월 16일이며 이를 양력으로 맞추니 10.26이었다. 명량대첩은 2014년 김학민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한국영화사상 최다인 1,7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역사 속의 10.26 네 사건이 모두 일본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1979년 오늘 시해된 박정희야 말로 다카키 마사오, 오카모도 미노루로 두 번씩 창씨개명 했으며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 출신에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던 전형적이고 적극적인 친일 인사였기 때문이다. 10.26은 역사의 엄정함을 일깨워준다.

역사학자 E H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10.26에 얽혀 있는 네 가지 과거사에서 오늘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옷깃을 여미고 역사와 나라를 생각해보게 된다.

/김기만 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청와대 춘추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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