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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척(慘慽)의 심정

최준호 칼럼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아직 피어 보지도 못한 생때같은 자식들을 창졸지간에 잃고 참척의 슬픔에 빠진 10.29 참사 유가족들이 참사 발생 24일 만에야 가슴에서 끓어 오르는 울분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영정 사진 하나 없이, 위패 하나 없이 국화꽃만 있는 분향소는 누구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한 분향소인가. 살다 살다 이런 분향소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이게 사회적 참사로 자식 잃은 유가족을 진정으로 위로하기 위한 일인가. 책임 있는 당국자와 대통령은 유가족 앞에 나와 사과하라” "한 말씀만 하소서"
“너무 배가 고파 혹시라도 밥이 들어가면 어쩌나 싶어 입을 꿰매고 싶고 뼈에 붙은 내 살을 찢어발기고 싶다... ”

배우 이지한의 어머니의 절규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참혹할 참, 슬플 척 자를 써서 참척(慘慽)의 고통이라 하지만 이 또한 자식을 잃은 어미의 마음을 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그저 인간의 말일 뿐이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녹아내리고 눈물이 그치지 않는데 도대체 누가, 왜 저들의 외침을 가로막아 왔는가.

참사가 발생한지 거이 한달이 되어서야 눈물과 오열 속에 있는 유족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 자식이 왜 죽었는지 누구를 만나야 정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며 재난참사의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절규했다. 29년 전 태어난 날짜와 시간이 분명한 내 아들이 죽었는데 사인도 미상, 사망 시간도 미상, 사망 장소도 미상인 채 어떻게 떠나보낼 수 있냐고 물었다.

칼만 들지 않았을 뿐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나 다름없다며 발로 뛰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느라 숨만 쉬는 식물인간들을, 직무유기에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엄벌에 처해 달라 주문했다.

상은씨 민아씨 은지씨 아버지, 남훈씨 지한씨 어머니, 내 아이들과 또래인 자식들을 잃은 부모님들. 저 자리에 내가 앉아있을 수도 있었다. 8년 전 세월호 때도 운이 좋았고 지금도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엄청난 참사 앞에서 한 치도 부끄러워하거나 죄스러워하지 않는 무리들을 보며 다음은 또 누가 저 자리에 앉을 것인가만 남은 것이냐 싶다.

26세 이상은씨 아버지가 딸의 이름으로 절규한 "한 말씀만 하소서"는 아들을 잃고 통곡한 박완서 작가의 절규이기도 했다.

“원태야, 원태야, 우리 원태야,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야? 하느님도 너무 하십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 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병 한 번 치른 적이 없고, 청동기처럼 단단한 다리와 매달리고 싶은 든든한 어깨와 짙은 눈썹과 우뚝한 코와 익살부리는 입을 가진 준수한 청년입니다. 걔는 또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젊은 의사였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가시다니요. 하느님 당신도 실수를 하는군요. 그럼 하느님도 아니지요” -‘한 말씀만 하소서’-, 박완서

생전에 스물여섯 살의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작가는 이 글을 일러 일기라 했다. 통곡 대신 쓴 글이라 했다. “내 수만 수억의 기억의 가닥 중 아들을 기억하는 가닥을 찾아내어 끊어버리는 수술이 가능하다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련만... 하나님이란 그럴 수도 있는 분인가. 차라리 없는 게 낫다.”

그는 참척을 당한 어미에게 하는 조의는 아무리 조심스럽고 진정에서 나오는 위로일지라도 모진 고문이고 견디기 어려운 수모라고 했다. 그리고 내 아들이 죽었는데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그것까지는 봐주겠는데 카타르 월드컵은 예정대로 열리고 내 자식이 죽었는데도 전국 곳곳에서 함성과 열기로 가득찬 응원전이 열리는 것을 어찌 견디란 말이냐 통곡했다.

자식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그리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당장 젊은이들이 죽어나가는데 책임자가 되어서 설렁탕 한 그릇에 뒷짐지고 어슬렁 어슬렁거릴 수는 없는 것이다. 책임을 묻는 외신기자들 앞에서 영어실력이나 자랑하며 웃을 수는 없는 것이다.

똑같이 자식 키우는 어미이면서 축제가 아니라 현상이라느니, 할 만큼 했다느니, 경찰이 있었어도 못 막을 사고였다느니, 여기서 158명이 죽었야느니 등 그저 뚫린 입이라고 씨부릴 수는 없는 것이다. 내 나라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158명이나 죽고 아직도 그 이상의 ‘숫자’가 병원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현장에서 몸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닌 책임자를 피의자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인두겁을 쓴 사람이라면 말이다. 유족의 6가지 요구사항은 모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이 거의 대부분이다. 유족들과 함께 싸우지 않는다면 다음은 누구 차례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 무도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야 할지 앞이 캄캄하다. 참으로 두렵고 무섭고 잘망스런 세상이다. 겨우 지도자 한명 바뀌었을 뿐인데...

/최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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