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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같은 ‘쪼다’ - 如弟措大

고전번역학자 박황희 칼럼
우리말에 ‘쪼다’라는 단어가 있다. 국립 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조금 어리석고 모자라 제구실을 못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이 말의 어원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이 말이 어디에서 유래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대략 서너 가지 유형의 가설들이 혼동을 더 해주고 있다.

첫째는 장수왕의 아들 이름이 ‘조다(助多)’라는 데에서 말미암았다고 주장하는 설이다. 장수왕이 96세로 장수하는 바람에 재위 기간이 하도 길어서 아들 ‘조다(助多)’는 태자만 하고 왕 노릇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멍청한 사람들을 빗대어 ‘왕 한번 못해 본 조다(助多)’ 같은 놈이라는 데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둘째는 한자어 ‘조두아(鳥頭兒)’가 변해서 만들어진 말이라고 주장하는 설이다. ‘조두아’는 말 그대로 ‘새 대가리 같은 아이’라는 말로서 ‘멍청한 놈’이란 뜻인데 이것이 조두아 > 조돠 > 조다 > ‘쪼다’로 변형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셋째는 60년대 상영되었던 벤허라는 영화의 주인공 ‘유다 벤허’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는 설이다. 벤허의 유다가 너무 바보 같다는 생각에 ‘나쁜 놈 쥬다’로 발음하던 것에서 ‘쪼다’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지나치게 작위적인 면이 있는 듯하다.

넷째는 석가모니 제자 ‘조달이’가 ‘쪼다’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설이다. 부처의 본명은 ‘싯다르타’인데, 보리수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에 ‘샤카 부족의 깨달은 자(모니)’로 불려 ‘샤카모니’가 되었다. 이를 중국식 한자로 쓰면 ‘석가모니(釋迦牟尼)’가 된다.

그런데 이 석가모니에게는 사촌 동생인 ‘데바닷타(Devadatta)’라는 제자가 있었다. 데바닷타가 처음에는 석가모니를 따라 수행을 잘하였으나 신통력을 배우면서 욕심이 생겨 자기만의 새로운 종파를 만들고 석가모니를 시해하려고까지 하다 실패하여 용서받지 못할 악인으로 낙인찍힌 사람이 되고 만다. 이 데바닷타가 한자어로는 ‘제바달다(提婆達多)’가 되고 ‘제달(提達)’이 되었다가 다시 ‘조달(調達)’이 된다. ‘조달이’가 ‘조다’가 되고 마지막에 경음화 현상으로 ‘쪼다’가 되었다는 것이다.

친동생 ‘아난존자’와는 너무나 다른 인생으로 대별 되는 인물이 불가에서는 바로 ‘데바닷타’, ‘조달이’ 곧 ‘쪼다’라는 것이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보이는 설이나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면 모두가 다 매우 억지스러운 주장에 불과하다. 고문서를 공부하다 보면 이 말에 진위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쪼다’라는 말은 한자어 ‘조대[措大]’에서 유래한 말이다.

현대어 사전에 ‘조대’라는 말은 ‘청렴결백한 선비를 이르던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 말의 속뜻은 ‘큰 일을 조치하다’라는 뜻으로 선비들이 큰 일을 잘 처리하였기 때문에 선비의 별칭을 ‘조대(措大)’라고 하였다.

송나라 증조(曾慥)가 편찬한 《유설(類說)》과 진계유(陳繼儒)의 《침담(枕譚)》에도 ‘조대(措大)’에 관한 사례가 등장한다. 우리나라에도 고려 시대 이규보의 시에서부터 선비의 별칭으로 사용된 용례는 무수히 많이 있다.

‘조대(措大)’가 처음에는 ‘청빈한 선비’를 가리키는 말로서 ‘빈사(貧士)’나 ‘빈유(貧儒)’와 같은 뜻으로 쓰이던 것이 점차로 ‘빈약한 서생’을 지칭하다가 후대에는 현실적으로 ‘무능한 서생’을 지칭하는 말로 전이 되었다. 이것이 현대에 와서는 무능하거나 무력한 사람을 비하하는 비속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선현의 문집에서 뿐만이 아니라 고간찰(古簡札)의 용례에도 ‘권조대 좌하(權措大 座下)’, ‘김조대(金措大)’ 등등, 셀 수없이 많은 사례가 등장한다. 최근에 읽었던 간찰(簡札)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近例使行, 皆用漢緞官服, 而‘如弟措大’, 豈有此等服色乎?”
- 근례사행, 개용한단관복, 이‘여제조대’, 기유차등복색호?
“요즈음 사신의 행차를 예로 들자면 모두 중국의 비단으로 만든 관복을 사용하는데, ‘저와 같은 조대’ ‘가난한 선비’가 어찌 이러한 복색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옛 편지에서 ‘제(弟)’는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고 상대는 나이에 관계가 없이 높이는 말로 ‘형(兄)’이라 통칭한다. 그러므로 ‘여제조대(如弟措大)’란 ‘저와 같은 조대’라는 의미이고 ‘조대’가 경음화 되어 ‘쪼대’가 되었다가 현대에 와서는 ‘쪼다’로 발음이 변이된 것이다.

선생이라는 말이 옛날에는 지식인에 대한 극존칭으로 쓰였으나, 지금은 오히려 상대방을 얕잡아 보고 낮추어 부를 때 쓰이기도 하는 것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선비, 그것도 가난한 선비일 경우에는 무능력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수십 년 전만 하여도 안동이나 상주 등 경상도 일대에서는 ‘쪼대’라는 말을 어리석은 선비의 비칭으로 많이 쓰였었다. 

현대와 와서 ‘쪼다’는 원래의 본뜻이었던 청빈한 선비로서의 ‘빈사(貧士)’나 ‘빈유(貧儒)’의 의미는 사라지고 어리석고 모자라 제구실을 못 하는 사람을 백안시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그 ‘무능한 서생’의 비속어인 ‘쪼다’가 오늘은 꼭 나를 지칭하는 조롱의 말인 듯하여, 우울증에 사로잡힌 나를 더욱 의기소침하게 한다. 에고 이런 ‘쪼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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