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스크루지 문 영감의 ‘분재기(分財記)’

고전번역학자 박황희 칼럼
내가 사는 동네에 '문(文)' 씨 성을 가진 지독한 수전노 스크루지 영감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성씨가 다른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가 개성이 독특하고 성미가 제각각이어서 우애라고는 ‘1’도 없었다.

문 영감이 공직 생활을 마치고 은퇴하는 시점에 각각의 아들에게 재산을 분배하여 분가를 시키고자 하였는데, 일곱 아들은 그전에 이미 사달이 나고 말았다.
첫째는 적장자 ‘낙엽’이다. 이 인간은 분재(分財)를 시작하기도 전에 제일 먼저 유산을 상속해 달라고 생떼를 써서 한밑천 받아 쥐고는 곧바로 집을 나가버렸다. 지금 만리타향 미국에서 갈치 낚시를 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모르긴 해도 성경 속의 탕자처럼 거지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둘째는 입양아들 ‘철수’이다. 이 철부지는 소풍 갈 때마다 지가 제일 좋아하는 솜사탕을 그렇게 열심히 사주었건만, 윤 씨 집에서 파는 눈깔사탕에 현혹돼서 그 집의 알·바를 자청하더니 끝내는 가출하여 윤 씨네 머슴이 되고 말았다. 사탕의 단물이 다 빠져 봐야 정신 차릴 놈이다.

셋째는 사고 친 아들 ‘희정’이다. 이놈은 오토바이 마니아였다. 뒷좌석에 여자 태우고 하이킹 가던 중 까불고 난리 발광을 치다가 그만 덤프차를 처박고 중태에 빠져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다.

넷째는 게임에 중독된 아들 ‘경수’다. 이 녀석은 게임을 지나치게 좋아해서 친구랑 PC방에 갔다가 ‘드루킹’이라는 게임에 빠졌는데, 옆좌석의 친구가 동네 건달과 싸움이 나자 말린다는 것이 그만 한패로 연루돼 폭력 전과자가 되어 수감 중인 비운의 아들이다.

다섯째는 수양아들 ‘민국’이다. 비록 주어다가 키운 아들이긴 했지만, 여러 아들 중 가장 똑똑하였다. 그러나 계모와 다른 아들들의 눈 밖에 나서 허구한 날 무고한 모함을 받았으며, 아비로부터도 땡전 한 푼 못 받고 엄동설한에 쫓겨났다. 성경 속의 요셉처럼 형제들에 의해 타국에 노비로 팔려 간 것이다. 현대판 인신매매를 당한 가장 불쌍한 아들이다.

여섯째는 씨 다른 아들 ‘석열’이다. 이 인간 망종(亡種)은 문 씨 영감이 재혼하면서 계모가 데리고 온 아들인데, 다른 아들 몰래 뒷돈도 대주고 논밭도 사주면서 장사 밑천까지 몰래 한 몫 지워주었다. 그러나 이 금수만도 못한 배은망덕한 종자는 그 돈으로 날마다 라마다 룸싸롱에 가서 술이나 퍼먹다가 그만 술집 작부와 정분이 나서 아비의 집문서를 몰래 들고 기어이 그녀와 함께 야반도주하고 말았다.

일곱째는 배다른 아들 ‘재명’이다. 이 막내아들은 팔자가 매우 기구하였다. 본처에게서 난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생모가 일찍 죽는 바람에 어려서부터 온갖 노동을 하며, 스스로 학비를 조달하였다. 그러나 이복형제들로부터 늘 왕따를 당하는 찬밥 신세였다. 아비인 문 영감마저도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을 삥땅하였을 것으로 의심하며 구박하기 일쑤였다. 분가할 때도 땡전 한 푼 주지 않고 키워준 은혜만으로도 감지덕지하라고는 야멸차게 내몰았다.

세월이 흘러 일곱 아들은 지금 모두 각자의 팔자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 스크루지 문 영감 또한 두 자식에게 뜯긴 것 말고는 큰 탈 없이 자식들 몰래 꼬불쳐 놓은 비자금으로 양산 힐스에서 입양한 ‘개’들과 함께 뒷산으로 산책이나 다니며, 자신의 노후를 만끽하고 있다.

문 영감은 이제 이것으로 자식들에 대한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며 깨끗이 손을 털고 말았다. 그는 ‘자식의 미래’나 ‘가문의 장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당대에 자신의 체면과 이미지만 중요시할 뿐 ‘가문의 명예’나 ‘식솔들의 안위’ 따위에는 인색하고 무심한 사람이었다.

세월이 좀 더 흘러 머잖은 시기에 문 영감의 가문에 대한 새로운 평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아울러 그의 ‘보신책’과 ‘기만술’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새로운 역사가 기어이 쓰이고 말 것이다.

앞으로 일곱 아들이 그려낼 그들의 인생 후반전 이야기가 매우 궁금하다. 탕자가 된 적장자 ‘낙엽’이와 ‘서자’와 ‘얼자’ 그리고 ‘수양’ 아들들의 반전 있는 인생이야기, 거기에 씨 다른 아들 ‘석열’이의 막장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 기대 만땅이다.

스크루지 문 영감이 인생 말년에 들어 지난날 자신의 과오를 후회하고 성찰할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의 염치는 있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되어 여기에 송(宋)나라 ‘소식(蘇軾)’과 원(元)나라 ‘정개부(鄭介夫)’가 하였다는 말을 남겨둔다. 모쪼록 크게 깨닫는 바가 있기를 기대한다.

“쥐가 없다고 사냥을 못 하는 고양이를 기르거나, 도둑이 없다고 짖지 못하는 개를 키워서는 안 된다. 不爲無鼠而養不獵之猫, 不爲無盜而養不吠之犬.” -소식(蘇軾)

“고양이를 기르는 것은 쥐를 방비하고자 함인데, 탐욕스러운 고양이인 줄 모르고 기른다면 음식을 도둑맞는 해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개를 키우는 것은 도둑을 막아내고자 함인데, 사나운 개인 줄 모르고 키운다면 사람을 해치는 폐단이 더욱 커질 것이다. 畜猫防鼠, 不知饞猫, 竊食之害愈甚. 養犬禦盜, 不知惡犬, 傷人之害尤急” - 정개부(鄭介夫)

그가 치세하는 동안, 사람을 관리로 쓸 때는 반드시 재주와 능력을 가려서 써야 하며 아무 하는 일도 없이 녹만 먹지 못하도록 해야만 했다. 뿐만이 아니라 쥐를 막으라고 기른 고양이가 도리어 반찬을 훔쳐 먹거나 닭을 물어 죽이는 일조차 발생하였다. 도둑 잡으라고 키운 개가 오히려 주인에게 덤벼들거나, 도둑과 내통하여 집안을 거덜 낸 초유의 사건이 생겨난 것이다.

아직도 후회와 반성이 없다면 스크루지 문 영감은 ‘사냥 못 하는 고양이’와 ‘짖지 못하는 개’, 그리고 ‘탐욕스러운 고양이’와 ‘사람을 무는 개’를 키운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될 것이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